그녀는 나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몸이 불편한 남자친구였기 때문에 갖게 되는 조바심이나 걱정이 아니라, '장애' 라는 것 안에 내포되어 있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나에게 묻고자 했다.

지하철역 출입구 앞에서 계단을 오르기가 불편한 사람에게 "제가 도와 드릴까요?" 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왜 장애를 갖고 나면 사람들을 피하게 되느냐?" 는 질문은 누구에게나 물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런 점들을 그녀는 내가 시원하게 대답해주기를 원했다.

여자친구가 다니는 회사에는 두 사람의 장애인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다리가 불편한 상태였는데, 그 중 고객상담 파트에서 근무하는 'L'이라는 직원의 행동이 사내 동료들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 다른 한 사람의 장애인은 물론 그녀 역시 다른 직원들의 장애인 비하 발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직장에서 다른 동료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는 'L'은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 정도가 심하지 않아 겉모습은 별 차이가 없었지만 날씨에 따라 근육의 수축이 심하게 일어나는 터라 환절기와 날씨가 추울 때에는 다리에 심한 통증을 호소했고, 의무실에서 찜질을 하고 나서야 업무에 임할 수 있었다.

동료들이 책상에 커피, 음료수 같은 간단한 주전부리가 있을 때 통증이 자주 있었던 그의 책상에는 항상 약국이나 의무실에서 처방받은 진통제가 놓여 있곤 했다. 늘 진통제와 씨름하며 업무를 진행하는 그에게 동료들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회사 차원에서도 추운 날씨가 예보된 경우 일찍 퇴근토록 조치하는 등의 배려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장애 속에서도 열심히 일했던 'L'의 모습에 회사는 다시 몸이 불편한 사원을 추가로 채용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전혀 엉뚱하게 나타났다.

여름을 제외하고는 다리가 아파 회식에도 참석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L'과 사원들간의 관계는 약간은 서먹한 상태였다. 'L'은 자기처럼 목발을 짚고 다니는 새로 입사한 사원과 함께 고민을 나누면 외로움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그 신입 직원으로 인해 'L' 자신이 장애를 핑계 삼아 업무를 게을리했던 사람으로 인식되고 말았다.

어렸을 때 뇌병변 장애를 얻은 'L'과는 달리, 똑같은 장애의 신입사원은 고등학교 때 교통 사고를 당했다. 유아기 시절부터 장애 때문에 온갖 물리치료를 받았던 그와는 몸 상태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회사 동료들의 눈에는 두 사람 다 똑같이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일 뿐이었다. 다리 통증 때문에 신입사원 환영회를 겸한 회식 자리에 가지 못했던 'L' 씨와 비교해 회사 동료들은 신입사원 'K'씨에게 'K'씨 역시 그렇게 다리 통증이 심한지 를 물었다.

"나이 드신 분들처럼 많이 다리가 저리기는 하지만 진통제를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라 는 답변이 나왔다. 그 자리에 'L'씨가 있었다면 변명을 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었지만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만약 신입사원 'K'씨가 어렸을 때부터 장애를 입었거나 장애는 유형에 따라 수반되는 증상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자리에서 'L'씨의 증상에 대해 조금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자기의 일이 아니고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 순간에 모범사원에서 장애를 무기 삼아 업무를 소훌히 한 장애인으로 추락한 'L'씨는 내 여자친구에게 자신이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사람들 속에서 사회를 배우고,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인간관계를 맺기 전에 장애를 입은 이들과, 그 후에 복지카드를 만들게 된 사람들은 생활하는 방식이나 문제점, 해결책 역시 다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모두를 '장애인'이라는 한 단어로 일반화시키고 있다.

비장애인 사회에서는 다양성과 개성의 존중을 외치고 있으나 비빔밥처럼 모두를 섞어 놓고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 등록 장애인이 4백만을 넘고 서울 시내에서 저상 버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나, 휠체어 장애인은 어쩌다 한 번 보는 우리 사회에서 어렸을 때부터 장애를 입어 교육권에서조차 차별을 당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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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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