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만난 폭포. 무서운 폭포를 마셔서 용기로 바꾸는 중. ⓒ신강수

나는 연극배우이다. 내가 연극배우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개그맨이 꿈이었다. 항상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고 즐거움을 주었기에 친구들은 나에게 개그맨이 되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고3 수능을 보고 원서를 쓸 때는 용기가 없어서 그나마 관심있었던 컴퓨터 학과에 지원했다.

솔직히 당시에는 용기도 없었지만 내가 웃음을 주는 대상은 친구들뿐이었고, 친구들이 '그냥 동정심에 웃어 주겠지'라는 생각을 했기에 도전을 못했던 것 같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과 대표가 되면서 세상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학교에서도 나의 웃음이 먹히는 것을 느꼈다. 우리 과 말고 다른 과 학생들도 웃었고, 엠티(MT : membership training)가서 장기자랑을 해도 웃었다. 비로소 '아! 내 개그가 먹히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대학생활 3년째 접어들면서 나는 그동안 숨겨왔던 나의 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내 꿈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어차피 태어나서 한 번 사는 인생 내가 해보고 싶은걸 해봐야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나의 머릿속에서 신호등이 고장난 도로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당시, 친구들은 다 군대에 가고 남자 동기는 나 뿐이서 생각을 정리할 겸 휴학을 하기로 결심했다.

휴학을 하면서 나는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국토대장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국토대장정을 성공하면 나의 꿈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국토대장정을 떠나려고 하는데 용기가 나질 않았다. 집을 떠나 타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막막했고, 과연 내가 힘든 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나를 차갑게 감싸안았기 때문이었다.

두려움도 잠시, 나는 다시 결심을 하고 자전거와 함께 국토대장정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고 모든 것이 다 힘들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일주일,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적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여행을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감이 생겨났다.

처음 보는 낮선 사람에게 길을 묻고, 밥을 얻어먹고, 숙박을 하고, 응원을 들으니 세상이 나의 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전국을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49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일부러 계획한 것도 아닌데 내가 존경하는 한비야씨가 우리나라를 걸어서 여행한 날과 똑같았다. 왠지 한비야씨와 동등한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나니 확실히 용기가 생기고 내 꿈을 확실하게 그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수능을 다시 보고 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 연기학과에 원서를 썼다. 그리고 당당히 합격했다. 합격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는 개그맨이 꿈이었지만 코미디연기학과에 들어가 코미디와 예술에 대해 배우고 나니 개그맨 말고도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코미디 외 예술 분야는 거의 습득을 했다. 연극, 뮤지컬, 개그, 실험극, 마임극, 무용극까지. 그리고 지금 나는 이렇게 배우의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이렇게 나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특히 장애인들에게는 더더욱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내가 속해 있는 극단은 장애인 극단이지만 나와 함께하고 있는 배우들은 장애인들 속에서만 연기하는 것이 아닌 비장애인 극단에 들어가서 공연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배우들은 콧방귀를 끼거나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심하기도 하다. 도전해보지 않고 판단하는 자체가 너무 싫다. 그리고 몇몇 배우는 도전을 해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도전 횟수는 1~2회 뿐이다.

나는 장애인 극단에 들어오기 전 비장애인 극단에서 활동했다. 그 극단에 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이력서를 쓰고 지원했었다. 나중에 세어보니 50군데가 넘었었다.

장애인뿐만 비장애인들의 경우도 '안 되면 되게 한다'는 근성이 없는 모습을 보면 매우 안타깝다.

워크숍을 통해서 장애인들 대부분이 사회생활의 경험이 없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속상했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장애인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의 글을 보고 '너는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장애인, 그리고 우리가 아는 유명한 장애인들 중에는 1급 중증 장애인들도 있다. 그럼 그들은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없어서 나오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그들은 용기가 있기 때문에 세상과 소통하려 하고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진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아니라 그 시선을 두려워하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가만히 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느끼지 말았으면 한다. 세상에 나오고 싶다면 장애라는 벽을 허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벽을 허물고 용기를 내어서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 극단 '휠'도 장애인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연기를 통해 많이 도와주고 있으니 두렵다면 우리 '휠'을 찾아와도 좋을 것 같다.

용기란 두렵고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낮은 문턱에서 한 발 내딛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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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 연기학과를 졸업하고, 개그맨이 되기 위해 방송 3사의 시험을 수차례 봤다. 결과는 보는 족족 낙방. 주위 사람들은 네가 장애가 있기 때문에 떨어진 거라고 말하지만 실력이 부족해 떨어졌다고 생각할 만큼 장애에 대해서는 매우 낙천적이다. 수많은 공연으로 무대 위에서 만큼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무대 위의 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이 장애인인지 비장애인인지 아님 또 다른 부류인지 헛갈려하고 있다. 지금은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고,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장애인 비장애인이 아닌 평범한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하는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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