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이솝우화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은비 까비의 옛날 옛적이라는 만화가 있다. 이 만화는 전례동화나 설화를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는 만화 프로그램이다.

이 만화를 보면 ‘가재가 된 징거미’라는 만화가 나온다. 징거미는 바닷게를 보고 게처럼 강한 집게발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래서 까비의 도움으로 용왕님에게 집게발을 받게 된다. 너무 좋아한 징거미는 바닷게가 사는 마을로 가지만 쫓겨나고 다시 징거미 마을로 가게 되지만 그들은 집게발을 가진 징거미를 두려워서 도망가 버린다. 외롭게 혼자 남은 징거미는 결국 바위에 숨어서 지내게 되고 그게 바로 가재가 된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도 한때 장애인, 비장애인에 대한 혼돈이 주름이 진 나의 뇌를 다리미로 반듯하게 펴 멍한 느낌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극단 휠에 들어오기 전까진 장애인을 접해 본 적이 없었다. 비록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장애가 있다고 해서 장애인학교에 보내지 않고, 평범하게 살기 위한 바람으로 비장애인 학교에 입학해 학창시절을 보냈다.

학창시절 때 내가 말썽을 피우면 장애가 있어서 기합이나 매가 필요할 때 제외를 시키는 일이 전혀 없었다. 모든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해줬다. 어떤 면에서는 날 장애인으로 보지 않아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기합이나 매가 너무 아프고 힘들 땐 차별 좀 해주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에 항상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고 재미있게 놀다보니 친구들도 많이 따랐고,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나에게 장애가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다만 밖을 돌아다니면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의 겉모습을 보고 나에게 놀림을 던졌다.

처음에는 많이 상처를 받았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세상에 나가려 하고 그 놀림을 즐기려 했다. 그러다보니 상처에 굳은살이 박여서 무감각해졌다.

또 내가 나온 학교가 예술대학교이고 무대에서 나를 보여주는 직업이다 보니 내가 먼저 내 자신을 보이지 않고, 무대에 오르게 되면 나를 놀라움이나 걱정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공연은 긴 호흡의 공연이고, 상대 배우와의 호흡 그리고 캐릭터의 몰입과 극의 전개에 따라서 배우의 모습은 쉽게 잊게 된다. 그러나 내가 주로 했던 개그 공연은 짧은 호흡으로 이뤄지고, 상대 배우와의 호흡도 보여주지만 관객을 웃겨야하기 때문에 관객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장애를 가지고 관객에게 다가가면 관객은 불편해하고 꺼리는 현상이 생긴다. 그래서 관객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 장애의 편견을 깨야한다. 그러다보니 내가 무대에서 보여준 개그는 장애를 이용한 개그였다.

“내가 키가 작다. 원래는 키가 컸는데 휴대하기 편하기 위해 집에다가 두고 왔다”던지 아님 한창 이슈였던 루저라는 발언을 이용해서 “루저들의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180이상의 키 큰 사람들을 나무라면서 다가가는 등. 그러면 사람들은 웃음으로 보답했다.

이렇듯 장애를 가졌으면서도 비장애인과 함께 잘 어울리면 살아왔다. 그리고 학창 시절 연기 연습을 하거나, 아크로바틱 같은 힘든 신체 훈련을 할 때 비장애인에게 지지 않으려고 두 배로 노력했다.

내 마음 한켠에는 그들을 이겨야 무시당하지 않고, 장애인이라고 얕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들을 따라갈 수 없는 부분도 있고, 그렇다고 장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노력한 근본적인 이유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해온 것이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된 계기는 지금 소속되어 있는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에 들어가면서부터다. 휠에 들어와서 장애인을 처음 접하고 들었던 나의 생각은 과연 이들이 연극을 잘 만들어갈 수 있을 까였다.

이런 의문이 들었던 이유는 내 머릿속엔 비장애인 극단에서 연습했던 연습량을 나보다 더 심한 장애인들이 과연 따라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의문도 잠시 휠은 휠만의 색깔과 그들만의 방식으로 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 많이 부끄러웠다.

같이 대본을 리딩하고 동선을 맞추며 연습을 진행할수록 점점 내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 혼돈이 왔다. 나는 비장애인 극단에서 연습한 패턴대로 하고, 그 모습을 보던 연출은 다른 배우들에게도 나와 같은 에너지를 원하는 것이다.

분명 난 휠 소속 배우들과 연습환경이 다른 곳에서 활동을 했는데 연출은 다른 배우들에게 나와 같은 에너지를 원하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내가 과연 이곳에 들어와서 다른 배우들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라는 의문이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못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한다. 하지만 연출의 욕심이 나와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 버렸다.

비장애인 극단에 있으면 난 분명 장애인이고 맡을 수 있는 배역도 키 작은 역할이나 내 신체에 맡는 역할 뿐이었다. 하지만 장애인 극단에 있으면 많은 역을 할 수 있는데, 나의 정체성에 혼돈이 온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과연 누구이고,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고민이 되고 나도 가재가 된 징거미처럼 바위에 숨어서 살아야하는지도 의문이 든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그냥 그 환경에 맞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장애인이고 극단 휠 소속이기에 그곳에서 부족한 면을 서로 채워주고 함께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나’, 이 말은 내가 죽을 때까지 풀어가야 할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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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 연기학과를 졸업하고, 개그맨이 되기 위해 방송 3사의 시험을 수차례 봤다. 결과는 보는 족족 낙방. 주위 사람들은 네가 장애가 있기 때문에 떨어진 거라고 말하지만 실력이 부족해 떨어졌다고 생각할 만큼 장애에 대해서는 매우 낙천적이다. 수많은 공연으로 무대 위에서 만큼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무대 위의 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이 장애인인지 비장애인인지 아님 또 다른 부류인지 헛갈려하고 있다. 지금은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고,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장애인 비장애인이 아닌 평범한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하는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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