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을 보면 '학생이 교사 폭행'이라든지 '교사가 학생 폭행'이라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기사들을 보면서 요즘 스승과 제자 사이가 많이 무너졌구나 생각만 했지 이 문제가 나에게 다가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 극단에서 교육 사업을 한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이 기사가 나에게 현실로 다가오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었다. 교육과정을 전문적으로 수료한 비장애인 선생님도 학생들 대하기가 어려운데 과연 장애를 가진 내가 강단에 섰을 때 학생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라는 두려움이 내 온몸을 감쌌다.

장애인 극단에서 아카데미를 실시하게 되면 실전에서 프로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나 연출을 강사로 섭외해서 연기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그럼 극단에서는 아카데미를 받고 싶은 사람을 홍보를 통해서 극단 배우들과 장애인들이 함께 수업을 받고 수업이 끝나면 함께 연습을 해 공연을 보여주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 배우들이 외부로 나가 연극 수업을 진행하고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어야 한다. 대학 때 또는 사회에 나와서 전문 배우들을 가르치고 연출을 해본 경험은 있지만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하니 아이들을 만나보기도 전에 내 심장은 이미 밖에 나와서 아이처럼 천방지축 뛰어놀고 있고 내 입안은 가뭄이 날 지경이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난 내가 가르칠 아이들이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기획팀장과 함께 아이들을 교육해주는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다. 우리가 가르칠 아이들이 있는 곳은 씨튼해바라기라는 단체이다.

씨튼해바라기는 사랑의 씨튼 수녀회라는 단체이다. 이 단체는 거리에서 방황하는 소녀들과 성에 노출된 소녀들을 위해 마련된 보금자리이다. 이 말을 듣고 나니 내 심장은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감춰 버렸다.

특히 그곳에 계신 수녀님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이 상처를 입어서 자신의 감정 기복이 심하고 남자들을 꺼린다는 말에 난 녹다운이 돼버렸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건만 나는 만나기도 전에 백기를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상처를 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만남 이 만남은 까르보나르와 된장국의 만남처럼 조화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나의 도전정신을 다시 불태우게 되었다.

처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 다가왔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져서 극단 휠에 대한 소개와 선생님을 소개하고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이 있는지 보러 가는 시간.

씨튼으로 가는 내내 나의 감정은 불안과 초조 기대와 설렘이 나의 혈관을 분주하게 오고 갔다. 문을 열고 강의실로 들어가니 아이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이들의 환한 모습에 난 당황을 했다. 내가 생각한 아이들의 모습은 어두운 표정에 말도 없고 상처투성이인 아이들일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순진한 여고생의 모습이었다.

내가 말장난을 해도 다 받아주고 순진한 모습의 아이들. 나의 걱정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아이들과 나는 가까워지게 되었다. 일반 여고생들과 다를 바 없었던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걱정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내가 했던 걱정들은 비장애인들이 생각하는 장애인들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쥐구멍에 들어가 혼자 치즈를 먹으며 세상과 단절하고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감쌌다.

그런 생각을 한 내 자신이 부끄럽고 순진한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가득했다. 그 미안함을 없애려면 수업하는 동안 아이들을 위해서 노력하는 방법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의 첫 수업이 있던 날 나는 분위기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나의 트레이드마크인 개그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아이들은 즐겁게 웃어주고 나의 수업에 경청을 해주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은 내가 장애가 있기에 자신의 상처를 감추고 다정하게 다가 온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의 표정엔 그런 건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대본을 만들어 주고 연기를 지도해주는 시간이 나에겐 대학교에서 거금을 들여 등록금을 내고 배우는 시간보다 더욱더 값지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이들도 나에게 배우는 시간이지만 나도 아이들을 통해서 더욱더 값진 것을 배우고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도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 가르치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동안 아이들과 정도 많이 쌓였고 지금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대로라면 내가 처음에 계획했던 아이들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수업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더불어 내안에 있는 상처도 치유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나의 자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교육 사업이 잘 되어서 학생 교사 폭행이 아닌 '장애를 가진 선생님이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다'라는 기사를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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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 연기학과를 졸업하고, 개그맨이 되기 위해 방송 3사의 시험을 수차례 봤다. 결과는 보는 족족 낙방. 주위 사람들은 네가 장애가 있기 때문에 떨어진 거라고 말하지만 실력이 부족해 떨어졌다고 생각할 만큼 장애에 대해서는 매우 낙천적이다. 수많은 공연으로 무대 위에서 만큼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무대 위의 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이 장애인인지 비장애인인지 아님 또 다른 부류인지 헛갈려하고 있다. 지금은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고,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장애인 비장애인이 아닌 평범한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하는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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