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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를 샀다, 그리고 집을 나섰다

다른 이의 시선·말들로 하고 싶은 것 포기 못해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0-11-10 14:21:06
“이모, 이모는 바지가 좋아?”

항상 바지만 입는 내게 어느 날 조카가 물었다.

“음, 이모는 치마보다 바지가 더 좋아”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난 사실 바지보다는 치마를 훨씬 더 좋아한다. 어렸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난 어린 조카에게 치마를 좋아하는데도 바지만 입는 복잡 미묘한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에 그냥 ‘바지를 더 좋아한다’는 거짓말을 해버렸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어렸을 때부터 난 바지만 입었다. 그 이유는 항상 앉아만 있는 나에겐 치마보다 바지가 편하고, 남들이 보기에도 양쪽에 철 지지대가 있는 투박한 보조기와 가는 종아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치마보다는 감쪽같이 가릴 수 있는... 바지를 입은 모습이 더 보기 좋다는 엄마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가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치마를 못 입게 하니 입고 싶은 마음은 눈덩이처럼 점점 더 켜져만 갔다. 초등학교 시절 또래 친구들이 입은 꽃무늬 원피스가 바람에 팔랑이면 어찌나 예뻐 보이고 입고 싶었는지…….

중·고등학교 때 상·하의 한 벌로 된 치마 교복을 입은 친구들의 모습도 항상 나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치마를 입고 싶다’고 주장하거나 고집을 피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해도 엄마의 말이 아주 틀린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은 사회의 편견 속에서, 당신의 딸이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으로 보이기를 원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쩜 당연한 것이리라. 그리고 그때는 나 또한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다른 이의 시선이나 말들이 더 마음에 남아 내 행동을 결정지어 버리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치마를 샀다. 사실 치마를 사려고 한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치마를 입고 싶은 마음에 몇 번 더 치마를 사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안에서는 두 가지의 마음이 전쟁을 하곤 했다.

치마를 입고 싶은 마음과 막상 입었을 때의 불편함, 타인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운 마음, 그리고 그 두 마음의 전쟁은 언제나 후자의 승리로 끝이나 버렸다. 더욱이 비장애인 위주로 만들어진 시중의 옷들은 용기를 내서 치마를 사러 간 나를 실망스럽게 만들고 어렵게 낸 용기를 빼앗아 가곤 했다.

이번에도 역시 치마를 사기가 쉽지는 않았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옷 사이즈나 치마 길이가 안 맞고, 또 겨우 만족스러운 것을 찾았다 싶으면 옷 입는 방법이 불편해서 사지 못하고 그냥 돌아서야만 했다.

자신의 몸에 맞는 사이즈만 있으면 원하는 스타일이나 디자인의 옷을 너무도 쉽게 척척 사는 다른 이를 보면서 드는 괴리감 또한 ‘그냥 하던 대로 하지 왜 또 발동이야’ 하며 내게서 다시 용기를 빼앗아 가려 했다.

작은 행동의 시작

하지만 얼마전 난 드디어 치마를 샀다. 이제는 더 이상 나 아닌 다른 이의 시선이나 말들로 인해 망설이고, 주저하다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사실 치마냐 바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원하고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옛날의 고정관념이 잘못된 것과 같이 겉으로 보이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서, 아니 엄밀히 말하면 신체의 장애 때문이 아니고 그것을 보는 그릇된 시선 때문에 자신이 입고 싶은 스타일의 옷을 입지 못하는 일 또한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마를 사는 것, 어찌 생각하면 너무 사소한 일인데, 이 작고 사소한 행동을 하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과 많은 용기가 필요했구나!’ 바지로만 가득 찬 옷장에 새로 사온 치마를 걸어놓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작고 사소한 행동을 시작한 내가 자랑스럽다. 이 작은 행동을 시작으로 얼마 후에는 조금은 달라져 있을 내 모습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오늘 처음으로 치마를 입고 집을 나섰다.

* 칼럼니스트 박주현은 글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으며 꾸준한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장애여성이다.

칼럼니스트 박주현 (grayment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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