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한도전>과 <장기하와 얼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에게서 잡아낼 수 있는 마이너리티 정서 때문이다. ⓒMBC

무한도전의 남자들

처음 여섯 남자가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고 지하철과 달리기를 할 때 든 생각은 말 그대로 ‘이건 뭥미?’ 였다. 아무 의미 없는 도전을 해대면서 끊임없이 수다를 쏟아내는 남자들이 측은하기도 우습기도 했다.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을 거쳐 <무한도전>으로 정착하기까지 이들이 겪은 시행착오와 멤버 교체는 이 프로그램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내 생각에 확신을 주었다.

어? 그런데 이상했다. <무한도전>이라는 타이틀로 완전히 독립된 프로그램이 된 후부터 성격이 서서히 바뀌었다. 시청자들에게 농을 던지는 자막은 마치 제작진과 대화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딱 봐도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따지는 게 우스운 남자들이 스스로 서열을 매기고 시청자들에게 서열을 매겨 달라고 요청했다. 본인들을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라고 칭하는 와중에도 서열을 매기면서 일희일비하는 모습은 이상하게 묘한 쾌감을 줬다.

얼마 전 무한도전 멤버들은 여름휴가를 떠났다. 콘셉트로 무계획을 선언하고, 즉흥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이들이 준비한 것은 드레스코드 밖에 없었다. 안 웃기는 뚱보 역할인 정형돈의 결혼식참석 복장이었다. 회색 수트, 적당히 구겨 신은 가죽구두, 떡진 머리, 특정 브랜드임이 드러나는 크로스 가방. ‘미친 존재감’으로 희화되는 정형돈의 철 지난 드레스코드는 언밸런스에 핵심이 있다. 그럼 우리는 왜 그 언밸런스에 동요되고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을까? 그것은 더 이상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 칭할 수 없는 무한도전의 남자들이 여전히 루저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실제이든 가상이든.

몇 년 전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인디밴드의 곡이 유행했다.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나 루저인데 뭐 보태준 거 있삼?’이라고 말할 것 같던 장기하는 사실 서울대 출신이었다. 천하의 서울대 출신이 내뿜던 88세대 정서는 네티즌을 사로잡았고(미미시스터즈의 기이한 퍼포먼스도 한몫하긴 했지만) 장기하는 루저들의 아이콘이 되었다.

나 힘없어, 근데 뭐 어쩌라고?

내가 <무한도전>과 <장기하와 얼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에게서 잡아낼 수 있는 마이너리티 정서 때문이다. 이리저리 팽 당하는 루저와 88세대는 사회에서 더 이상 오갈 곳 없는 소수자들이다. 여기서 소수자란 적은 숫자의 집단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힘없는 집단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2009년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빈곤층의 비율이 13%에 달한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힘이 없기에 소수자로 분류된다. WHO에 따르면 장애인은 전 세계 인구의 10%에 달한다. 가족까지 합하면 그 비율은 더 커질 테지만 장애인은 힘없는 소수자일 뿐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힘이 없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낼 때, 대부분 수치심을 느낀다. 그래서 힘 있는 척 자신을 포장하는데, 그 포장은 보통 얼마가지 못해 벗겨진다. 진짜 힘 있는 자들이 ‘너 힘없잖아? 까불고 있어!’라고 들이대면 별 수 없기 때문인 거다. 그런데 <무한도전>과 <장기하와 얼굴들>이 대처한 방법은 당시만 해도 놀라웠던 ‘나 찌질해. 힘없어. 근데 뭐 어쩌라고?’였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과장 없이 판단하고 인정했다. 그것으로 마이너리티가 드러나고 오히려 마이너리티는 그들의 존재가치가 되었다.

위계질서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장애인은 영원히 마이너리티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사회를 구조적으로나 의식적으로 전복시키지 않는 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마이너리티를 부정하지 말고 받아들인 후 우리의 존재가치로 여기는 것은 어떨까? 높은 곳으로 무리하게 오르려 하지 말고 내가 있는 곳에서 나의 마이너리티를 인정한다면 어떨까. 대중의 의식을 전복시키는 것은 쉽지 않을지라도 나의 의식을 뒤엎는 것은 그보다 쉽다.

힘없음을 드러내는 순간 전전긍긍하던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우리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자유로워지면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질 것이다. 억눌려 있던 우리의 마이너리티 감성을 드러내고 적절히 요구한다면 사회와 보다 합리적인 타진이 이뤄지지 않을까? 비록 협상이 결렬된다 하더라도 노하거나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더 나은 방법을 찾으면 된다. 마이너리티의 생존법은 그런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현희는 장애여성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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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은 장애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장애여성 안에도 다양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같은 생각, 다른 목소리"에서는 장애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조금씩 다른 목소리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장애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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