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노동법이 아닌 내 병역문제에 대해 써 보려고 한다. 나는 마흔여섯(65년생)살의 지체장애 2급 장애인이다. 6살 때 구루병(비타민D 부족으로 뼈가 잘 자라지 않고, 약해지면서 휘는 병)에 걸려 10살(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치료와 수술을 계속해서 받아 왔고, 고3때부터는 양 목발을 짚게 되었다.

정확한 날짜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학교 2학년 때 징병검사(신체검사)를 받았고, 검사하는 분이 면제니까 돌아가라고 해서 돌아온 기억이 있다. 사실 양 목발을 짚는 내가 군 면제를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1996년도 3월쯤으로 기억이 되는데, 느닷없이 병무청에서 징병검사를 받으라는 전화가 와서 장애로 면제를 받았다고 했더니, 면제받은 기록이 없다고 하면서 다시 찾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후에 연락이 없어서 찾은 줄 알고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에 병역사항이 기재된 "주민등록초본"을 인터넷으로 발급 받는 과정에서 그냥 초본은 발급이 되지만, 병역사항 기재를 선택하면 발급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음날 주민센터를 방문했더니 병역사항이 없어서 발급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즉시 서울지방병무청에 전화를 걸어 정정을 요구했지만, 징병검사를 받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행정처리 상(당시 장애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 장애로 인한 면제는 불가능 하며, 나이가 많아서 면제를 받은 것으로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나는 징병검사도 받았고, 군대를 기피한 적도 없으며, 단지 장애 때문에 군대를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 것뿐인데, 이전에 징병검사를 받은 자료가 없어 장애로 인한 면제가 아니라, 나이로 인한 면제를 받으라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항의 했지만 담당자는 불만이 있으면 이의신청을 하든지 맘대로 하라고 했다.

사실 나이로 인한 병역 면제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병역을 기피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내게는 수치스러운 부분이고, 내가 공무원이나 기업체에 이직이나 취업 때문에 병역관련 자료를 제출할 때도 나이로 인한 면제로 되어 있을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내 자존감을 위해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징병검사 자료가 없다면, 내가 징병검사를 받지 않았든지 받았는데 병무청에서 자료를 분실했든지 둘 중에 하나일 꺼다. 만일 내가 징병검사를 받으라는 통지서를 받고도 징병검사를 받지 않았다면, 병역법 위반(제1국민역 편입대상자 신고서 미제출)으로 벌금을 받았어야 하는데 나는 전과기록이 없다. 따라서 병무청에서 자료를 분실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또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군 면제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 것이고,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진찰만 받도록 해도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책상에 앉아 서류를 찾아보는 것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듯이 말하는 담당자의 말투에 더 기분이 상했다.

힘없는 국민 한사람이라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방법을 마련하기 보다는, 행정처리 상 안된다면서 민원을 넣든지 맘대로 하라는 식의 거만한 자세는 공무원의 자질마저 의심케 했다.

그래서 먼저 신문고에 민원을 넣었지만, 민원이 병무청으로 이관되면서 담담자에게 똑같이 행정처리 상 불가하다는 연락을 받았고, 10월에는 여권 실세라는 이재오씨가 위원장으로 있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담당 조사관의 사실조사를 거쳐 서울병무청에 장애로 인한 병역면제로 정정하도록 권고했고, 병무청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심을 청구했지만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하지만 병무청은 아직까지 국민권익위원회의 시정권고(2010. 3.)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생활기록부에는 지체부자유자(당시에는 장애인대신 이 표현을 썼다)라고 표시되어 있고, 초등학교부터 대학 동기들까지 내 장애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 내가 걸린 구루병은 성인에게는 발병하지 않고 유아기에 주로 발병하며, 일단 걸리면 완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군대에 갈 시기에 장애가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한데도, 그 당시에 장애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병무청 담당자의 말에 기가 찰뿐이었다.

이제 국민권윅위원회의 시정권고도 듣지 않는 오만한 병무청을 상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행정소송뿐인데, 이마져도 구제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그동안 장애인노동상담센터를 찾았던 많은 장애인들에게 내가 했던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다시 한 번 마음을 굳게 먹어본다.

병무청 홈페이지의 병역면제 안내. ⓒ병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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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근 칼럼리스트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노동상담센터 센터장과 직업재활 팀장을 맡고 있다. 장애인 근로자의 상담사례를 중심으로 장애인노동상담센터를 운영하면서 느낀점, 자기계발 방법, 스트레스 해소법, 성공을 위한 업무습관 등을 곁들여 장애인근로자(또는 예비 근로자)가 알아두면 좋은 쉽고 재미있는 정보가 가득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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