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 리더양성 프로그램 일본연수에서는 많은 시간 서로를 기다려주고 배려해주면서 충분히 느리게 함께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사진은 도쿄의 히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앞에서 아키야마 히로코와의 만남 후 한 장면. ⓒ장애여성네트워크

다양한 장애와 활동

지난 6월 8일 오전 7시 30분 김포공항. 4월 27일부터 5월 25일까지 매주 화요일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장애여성리더양성 프로그램 기초과정(의사소통교육)에 참가했던 장애여성과 장애여성네트워크 스태프들이 3박 4일의 일정으로 일본 장애여성 리더들을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 우리 일행은 소아마비, 골형성부전증, 척수, 근위축증, 뇌성마비, 작은키, 절단장애, 지적장애 등 다양한 유형이었고 장애인단체 대표에서부터 자립생활센터 활동가까지 하는 일도 다양했다. 우리들은 일본행 비행기 안에서 저마다의 커다란 의미를 새겼지만, 장애여성 리더가 되고자 하는 포부만큼은 비슷했다.

너무도 느리고 충분히 꼼꼼한

일본공항에 대해서 여러 정보를 통해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으나 그래도 그 꼼꼼함은 나처럼 성격 급한 대한민국아줌마에겐 적잖은 스트레스 수준이었다. 완전 대박이었던 것은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나리타공항에서 출국수속 전 전동휠체어와 수동휠체어를 합쳐 총 여덟 대의 휠체어 사이즈를 재야한다며 줄자를 가지고와서 하나하나 쟀던 일이었다. 정말 악소리가 절로 날 지경이었는데, 덕분에 공항에서 가족에게 줄 자그마한 선물 하나 살 여유가 없었다. 이 역시 지나고 나니 그저 웃음만 나오는 추억담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지겨우리만큼 꼼꼼하고 세심하지만 공항 밖에까지 따라 나와 장애인 승객이 차를 타고 떠나는 순간까지 지켜주었고 떠나는 차를 향해 손까지 흔들어주던 일본공항직원들은 인상 깊었다.

일본의 장애여성 리더들

아사카 유호(쿠니다찌자립생활센터 소장). 골형성부전증인 50대의 그녀. 130c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열정은 내가 정말 닮고 싶은 부분이었다. 우리는 첫째 날 밤늦게까지 그녀에게 장애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곳에서 만난 유호를 비롯해 아키야마 히로코(히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나구모 기미에(탄포포 네트워크 대표) 외에도 히사코, 마야, 치에코 등 그녀들의 삶과 지난 20-30년간의 장애인운동, 자립생활 활동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장애여성들에게 있어 반드시 찾아올 2차장애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참가자들에게 결코 서두르지 말고 또한 욕심 부리지 말고 자신의 몸을 돌봐가면서 활동을 해 나가도록 하라는 아주 좋은 조언이었다. 일본의 장애여성활동가들. 그녀들에게 얻은 또 한 가지는 장애여성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에게 있어 동료상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동료상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어렴풋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동료상담이 많은 장애인들의 자립생활과 그 밖의 모든 운동에 있어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줄 것 같다.

한국의 장애여성들

연수단에 합류한 한국의 장애여성들 중 전동휠체어 이용자가 3명, 수동휠체어 이용자가 4명이었다. 자립생활센터에서 몇 차례의 해외연수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는 한 중증장애여성조차 이렇게 중증이 많이 참가한 연수는 처음 보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중증의 참여도가 높았다. 연수 기간 내내 스태프의 한사람으로서 빡빡한 예산에 너무 이상만 앞세워 연수단원들을 고생만 시키는 게 아닌지 회의가 들 정도였다. 한번 이동할 때마다 총 7대의 휠체어가 움직여야 했으니 말이 쉽지 정말 보통일이 아니었다. 특히 기관 방문을 위해 지하철로 이동할 때는 좁은 엘리베이터를 한두 대씩 나누어 타야 했기에 비장애인에 비해 세배 이상 시간이 걸렸다. 힘들다는 말이 가끔씩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임하는 모습에서 우리들의 굳은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들 중 한 뇌성마비 장애여성은 여자들로만 구성된 연수단이 처음이며, 일본에서 또한 여성활동가들과만 만날 수 있어 마음이 너무 편하고 안정되어 좋았다고 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억압적인 교육 때문에 결혼이나 육아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 일본에서 허심탄회하게 장애여성으로서의 삶과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혼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고 했다. 비로소 '여자'인 자신에 대해 느끼게 되었다니 얼마나 기뻤는지….

‘장애여성 리더’라는 말이 너무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고백한 한 장애여성은 장애인단체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여성 활동에 대해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정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으며, 앞으로 단체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 외에도 힘든 일정이지만 자신감을 채울 수 있어 좋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는 사람도 있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지적장애여성은 이번 연수단에서 가장 자신을 잘 표현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교류시간이 길어질 때면 무척 힘들어하고 왜 이렇게 지루하냐는 표현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이유와 일정에 대해 잘 설명해주기만 하면 자제심을 발휘하려고 노력했던 그녀. 이 정도면 3박 4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우리가 했던 고생에 비해 훨씬 더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서로에게 배우다

일본으로 연수를 떠났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그들에게 배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활동상을 알리고 각자의 삶과 활동에 대해 공유하기 위해 스피치를 준비해갔고, 그곳에서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20대의 근위축증 장애여성은 20년 가까이 집안에서만 지내다 최근 전동휠체어와 활동보조인을 활용해 세상 밖으로 오게 된 뒤 느낀 점과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뇌성마비 동료상담가는 시설에서 살다 자립생활을 시작한 뒤 현재의 주거공간을 확보하기까지의 도전기에 대해 스피치함으로써 일본의 리더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한결 같이 한국 장애여성들의 역동성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앞으로도 자주 교류할 것을 제안하는 일본의 리더들을 보며 겸손의 미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연수를 통해 우리 장애여성활동가들은 조금 더 강해지고 단단해졌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갈 길이 멀다는 아득함보다는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생각에 의욕이 솟는다. 하지만 결코 서두르거나 욕심을 부리지는 않으려 한다. 각기 다른 중증의 장애유형들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이기 위해 많은 시간 서로를 기다려주고 배려해주면서 충분히 느리게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이번 연수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정경숙씨는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쉬게 되면서 새삼스레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지체장애여성이다. 중학생인 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글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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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은 장애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장애여성 안에도 다양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같은 생각, 다른 목소리"에서는 장애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조금씩 다른 목소리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장애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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