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는 불법이면서 장애태아 낙태는 합법이고 안락사는 불법이면서 장애인, 환자 등의 안락사는 합법이고 살인은 불법이면서 장애인 살인에는 합법인가? 2010년 5월 19일, 법원의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중인 장애인단체들. ⓒ새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선택받지 못하는 사람들

장애인은 우리 사회에서 선택받지 못하는 집단이다. 가족에게 선택받지 못하고 친구에게 선택받지 못하고 연인에게 선택받지 못하고 일자리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다. 장애와 장애를 둘러싼 환경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다. 장애 자체로 혹은 장애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해서 혹은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해 생기는 무지로, 무지로 인한 고용시장에서의 탈락으로, 고용시장 탈락에 기인한 가난으로 사회에서 버림받는다. 이런 사회에서 이제 장애인 본인이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지난 주 충격적인 비보를 접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생명권조차 장애인 스스로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장애인을 선택하지 않는 사회에서 이제 장애인이 선택하지 않더라도 누릴 수 있던 권리마저 박탈당한 것이다. 지난 가을, 대법원에선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에 합법의 손을 들어줬다. 환자 본인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다고 결정할 수 있지만 대법원의 판결이 문제인 것은 가족 등 환자와 ‘기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 죽음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아는 죽여도 괜찮다?

이번 장애영아 살해사건에 임하는 법원의 태도도 그와 다르지 않다. 장애영아에겐 생명권을 선택할 권리조차 없었으며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고 가해자가 자수하였으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현재 낙태가 불법인 대한민국에서 낙태가 허용되는 기준에는 태아가 장애인일 경우도 포함된다. 산모나 태아의 생명이 위험한 것도 아니고 단지 장애가 있고 그로 인해 비용이 많이 들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대한민국에선 장애 태아의 생명을 얼마든지 빼앗을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은 생명권에 민감한 듯 굴지만 예외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결함이 있는 자, 즉 장애인이다. TV 프로그램에서 동물 한 마리만 죽여도 난리가 나는 이 나라에서 장애인의 생명권은 소리 높여 외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권리가 되었다. 도대체 이런 사회풍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장애인이 동물만도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감수해야 하는 것일까? 신체적·정신적 손상으로 인한 결함으로 인해 선택받지도 못하고 선택하지도 못하는 장애인이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게 있기나 한 걸까?

생명권이란 ‘인간의 생명이 불법으로 침해당하지 아니할 권리’이다. 낙태는 불법이면서 장애태아 낙태는 합법이고 안락사는 불법이면서 장애인, 환자 등의 안락사는 합법이고 살인은 불법이면서 장애인 살인에는 합법이라고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이대는 2010년 대한민국. 2010년의 대한민국에서 생명이 불법으로 침해당하지 아니할 권리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비장애인뿐이다.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을 뜻하는 권리가 장애인에겐 없다고 사회가 정의 내리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라는 보편적인 명제를 부정하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장애인만 빼고.

*칼럼니스트 박현희는 장애여성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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