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강좌를 수강한 뒤 2개월에 한번씩 나의 삶에 대한 글을 써 원고료를 받고 있다. 장애인이 되기 전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다. ⓒ장애여성네트워크

글쓰기와의 만남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고 나서 많이 막막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마치 외딴섬에 나 혼자 낙오된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들렀다가 우연히 장애여성네트워크의 글쓰기 모임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무작정 전화를 걸었더니, 아직은 강좌를 시작하지 않았고 강좌를 시작하게 되면 연락을 하겠다는 친절한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차츰 의욕이 시들해져갈 무렵 장애여성네트워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 걸음. 강좌는 일주일에 한 번씩이었지만 각자 숙제와 해와 거리낌 없이 발표를 하고 서로의 느낌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이었다. 마치 노랫말처럼 서로 간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를 느끼는 신선한 충격! 그러던 어느 날, 강좌를 맡아주었던 강사 선생님이 장애인 관련 잡지의 기사를 써보라는 제의를 했다. 망설임도 잠시, 기사를 써 제출하고 두 달 후, 기사를 썼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즈음 강사님의 전화. 잡지가 나왔으니 주소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잡지를 받아보고 너무 기뻤다. 아니, 이건 내가 장애인이 되기 전엔 한 번도 못해본 경험이 아닌가? 거기다 원고료라니! 결국 2개월에 한 번씩 장애인의 삶에 대해 써내기로 했다.

6개월간의 글쓰기강좌를 마치고 나서 요즘에는 장애여성 기자단모임에 가입해 매달 모임에서 잡지 기획도 하고 서로의 글을 함께 읽으면서 자극도 받고 있다. 기자단원들 모두 어찌나 글을 잘 쓰는지 조금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 그분들 역시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글쓰기를 연습한 덕분이라는 말을 들으며 나도 언젠간 잘 쓸 수 있겠지 하는 위안을 받고 있다.

동료상담을 시작하다

틈틈이 기자단 모임을 참석하던 중 장애여성네트워크에서 이번에는 동료상담가 양성교육을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동료상담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왠지 호기심이 생겼고 기자단 모임을 제외하면 달리 흥미 있는 일도 없어 동료상담 기초강좌에 참여하게 되었다. 2박 3일이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 첫날은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시간 시간이 두려웠다. 앞으로 닥칠 온전히 혼자인 내 시간. 하지만 웬걸? 너무나 시간이 빨리 흘러 놀랄 지경이었다. 그리고 숙소에서 동료장애여성과 함께 지내면서 장애인이 된 후 처음으로 혼자서 자립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동료상담가 기초과정을 하면서 침대와 테이블, 전동휠체어로 빼곡한 방안에서 편마비인 내 장애를 최대한 커버하는 방법을 드디어 발견했다. 동료장애여성과 차를 마시기 위해 찻잔을 들고 걸을 수 없으니 아예 테이블을 끌어와 차를 마셨다. 이불을 몸에 끌어오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집에서는 사람이 없으면 아예 이불을 안 덮거나 제치지 않았다. 그런 내가 동료상담으로 인해 자립생활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을 나누며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을 알기에 따뜻할 수밖에 없는 동료 장애여성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정이 가득했다. 동료상담의 원칙과 과정을 배우면서 서로 나누는 모습에서 천사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겪어 봐야 그 고통을 아는 법이듯 아파봐야 그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동료상담을 통해 느꼈다.

2박 3일의 과정을 통해 서로의 외로움을 알고 이해하는 우리 자신이야말로 동료상담을 잘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겼다. 말이 아닌 가슴으로 만난 동료장애여성들이 있기에.

예전엔 막막하기만 했던 장애인으로서의 삶이 글쓰기에서 시작하여 기자단 모임, 동료상담 과정을 거쳐 새롭게 시작되었다. 이제 내 미래에는 글쓰기와 동료상담이 포함되어 있다. 나에게도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칼럼니스트 양수경은 독특한 블랙유머의 소유자로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재발견한 장애여성입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장애여성은 장애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장애여성 안에도 다양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같은 생각, 다른 목소리"에서는 장애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조금씩 다른 목소리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장애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