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외래 진료에서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난 효정이, 호준이와 반가운 마음에 찰칵! 찰칵! ⓒ김빛나

“큰 누나라고 불러봐! 큰 누나!”

“큰 누나?”

하얀 모자를 쓴 조그만 남자아이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제 서 너 살이 되었음직한 아이는 내 침대 기둥을 붙잡은 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하얀 원숭이 같아 웃음이 피식 나왔다.

돌아온 병실에서 내 자리는 애교쟁이 지환이의 옆자리였다. 다섯 살인 지환이는 나와 같은 소뇌 종양으로 수술 후 뇌수종으로 다시 입원했다고 한다.

“빛나야 좀 눕지 그러니?”

“엄마! 나 또 토하면 어떡하지?”

“여기서는 엄마가 치우면 되니까 걱정 말고!”

중환자실에서 이틀 내내 토를 한 뒤, 나는 먹는 두려움이 생겼다.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양 의기양양 하게 말했다.

“엄마 나 뭐 좀 먹을래요!”

내 말에 어머니는 헤어진 이산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 하셨다. 수술 후 첫 식사였던 만큼 부드러운 음식으로 간단히 마쳤다.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자주 움직이고, 운동하라는 의사선생님 말씀에 산책을 했다.

“언니는 괜찮아요?”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내 안부를 묻는 아이는 수빈이였다. 지난 2월 교통사고 후 종양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수빈이는 며칠 전 수술하여 내일 퇴원한다고 해맑게 웃었다. 수빈이는 올해 12살로 얌전하고 의젓한 꼬마 숙녀였다. 우리들이 하루 중 가장 두려워하는 시간이었던 상처를 소독하는 시간에도 울지 않고 의젓하게 버틴 수빈이와의 인연은 하루 동안이었지만 자신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꼭 간직하고픈 아이였다.

산책 후 피곤해서였을까? 어머니와 수빈이의 대화를 들으면서 바로 곯아 떨어졌다. 기분 좋게 낮잠에 취해 있을 때 날 깨우는 방해꾼이 있었으니….

“나 달걀 먹을 거야! 엄마! 밥 차오면 나 불러!”

누구보다 밥차를 좋아하던 귀여운 먹보! 유나는 모야모야병으로 1차 수술에 이어 2차 수술을 며칠 전에 끝냈다고 했다. 모야모야병은 뇌혈관 중에 모야모야 혈관이라는 이상 혈관이 나타나는 병으로 보통 2차 수술 까지 받게 되면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모야모야병 환자들은 누구나 2차 수술까지는 통과의례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달콤한 낮잠에서 일어난 나를 흘낏 쳐다보는 아이가 있었다. 병실에서 가족 이외에는 아무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새침때기 아가씨, 효정이였다. 예쁜 효정이는 내일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내 침대 앞을 서성이며 빙그레 웃음 짓는 미소 속에는 어린 아이가 표현할 수 없는 수술을 앞둔 두려움과 슬픔이 묻어 있어 내 마음까지 짠하게 했다.

“응애 응애!”

유나의 외침에 놀랐는지 우리 병실의 막내 한빛이도 칭얼대기 시작했다. 한빛이는 18개월인데 입으로 음식물을 삼킬 수 없어 코로 음식물을 섭취하는 고통까지 갖고 있었다. 한빛이 역시 모야모야병으로 1차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병실의 하루, 또한 눈 깜짝할 만큼 빨리 지나갔다. 병실 식구들과 조금씩 친해지면서 이제까지는 내 장애까지 안고 생활하는 우리 가족만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족 한 가족 대단치 않은 가족이 없었다.

이튿날, 얌전 공주! 수빈이가 퇴원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집에 가는 수빈이는 좋아라 했지만, 수빈이 부모님께서는 이른 퇴원이 달갑지 않으신 듯, 수속을 밟는 내내 찜찜해했다.

그리고 미소 공주! 효정이는 수술 받으러 갔다. 모두들 효정이가 수술을 잘 받고 예쁜 모습으로 다시 보길 간절히 기도했다.

승찬이 어머니께서 주신 귀한 성경책. ⓒ김빛나

수빈이와 효정이가 가고 바로 중환자실에서 새 식구들이 올라 왔다. 나와 같은 날 수술한 승찬이와 호준이였다. 둘 다 악성 종양이라 수술 후에도 항암치료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밤, 수술동의서를 쓰기위해 긴 시간 대화를 나누셨다는 승찬이네 이야기는 들어서 이미 훤히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승찬이는 일곱 살로 소뇌종양을 수술한 지 4개월 만에 대뇌로 전이되어 수술하였다. 그럼에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나이답지 않게 의젓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중환자실에서 용감하게 혼자 밥을 떠먹던 승찬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호준이는 소뇌 악성 종양으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다섯 살인 호준이는 수술 후 뇌수 때문에 호수를 꽂고 있음에도 아픈 내색 없이 밝게 노래를 부르며 아픔을 견디는 모습이 참 대견했다. 긍정의 힘이었을까? 나도 중환자실에서 호수를 꽂고 있었기에 그 고통이 얼마나 큰 지 아는데 어린 호준이는 언제나 묻기도 전에 ‘네! 네!’ 대답하는 예스맨이었다.

어느 새, 우리 병실 식구들은 한 가족이 되어 아이들의 아픔을 내 아픔인 양 서로 아파하고 있었고,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 형제보다 나은 사이가 되었다.

한 가족이 되어 즐거운 주말을 함께 보낸 승찬이는 항암치료를 위해 무균실로 옮기게 되었다. 그 사이 정이 많이 들었고, 같은 날 수술 받은 동기애랄까?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식사를 마쳤을 때, 승찬이 어머니께서 오셨다.

“빛나씨! 선물이에요! 빨리 낫고!”

승찬이 어머니께서 주신 선물은 성경책 이었다. 기독교 학교를 다닌 나에게 성경책이란 하루 세끼 밥을 먹듯 아주 흔한 것이다. 그런데 직접 만드신 커버와 빽빽하게 쓰신 카드에는 어머니의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하늘나라에 가서도 이 인연을 함께 하고 싶다는…’ 승찬이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있는 선물은 날 감동시키기 충분했다. 항암치료를 받는 승찬이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드실 텐데도 날 기억하고 정성까지 주심에 그 동안 무늬만 크리스챤이었던 내 자신을 부끄럽게 했다.

그 성경책을 보는 사람들마다

“어머! 이렇게 예쁜 성경책은 처음 봐요!”

승찬이 어머니가 주신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고난 뒤 나는 언제나 든든하기만 하다. 하늘나라에서까지의 인연을 예약했으니….

‘인연의 끈이 닿은 사람은 태양과 달이 겹치듯 시간의 굴레 속에서 그렇게 한번쯤은 마주치게 되어있다’라는 말이 있다. 평생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는 이 말처럼 나와 인연의 끈이 닿아 만나게 된 서울대병원 5101호 식구들은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병원에서 맺은 인연은 항상 그 때 뿐, 서로의 상처를 건드릴까봐 오랫동안 그 인연을 이어나가지 못한다. 나에게 소중한 인연과 멋진 추억을 가져다 준 5101호는 내 마음 속에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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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국문학도를 포기하고, 음악을 선택한 아이. 하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는 아이. 안녕하세요^^ 김빛나입니다. 대학교에서 플루트를 전공했습니다. '독립연대'에서 '활동가'로 근무 중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심리상담가'가 되겠다는 스물다섯의 당찬 아이. 저는 꿈꾸는 아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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