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잎 클로버. ⓒ서종극

얼마나 흘렀을까?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무서워서 눈도 뜨지 못한 채, 귀만 쫑긋 내세웠다. 침대가 어딘가로 이동되고 잠시 후에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빛나야! 눈 뜨고! 손에 한번 힘 줘 볼까? 이제 발 들어봐! 왼발! 오른발!”

그때서야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려 중환자실에 와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가신 후에야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천장에 하얀 불빛이 밤이 되었음을 알려 주었고, 그리고 많은 침대들과 분주한 파란 옷의 사람들. 10년 전의 중환자실 풍경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딩동!”

초인종 소리와 함께 부모님이 들어오셨다.

“엄마! 나 괜찮아. 아빠! 나 얼마나 수술했어?”

10년 전, 수술 후 실어증에 걸렸을 때처럼 또 다시 내가 말을 못할까봐 수술 내내 맘을 졸이셨다는 부모님은 내 상태에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면회시간이 끝났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부모님이 나가셨다.

그 뒤 나는 연거푸 토를 했다. 다른 때 같으면 겁도 났겠지만, 아까 마취과 선생님께서 마취가 풀리면서 토를 할 수 있다고 하셨기에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새벽이 되어도 계속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웠다.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아예 내 손에 석션(침이나 가래를 빨아들이는 기계)을 쥐어 주셨다. 그리고 주변에 물티슈도 놓아주셨다. 처음에는 서툴러서 혀가 말려 기계에 들어가기도 하고, 살점의 띄어질 만큼 아플 때도 있었지만. 중환자실에 와 있음에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 한다는 성취감에 신이 났다.

“빛나야! 언니는 가야해! 다른 언니가 널 더 돌봐 줄거야.”

중환자실의 시계는 생각보다 빨리 갔다. 친해질 만하면 도망가는 것 같아 처음에는 이내 아쉬웠지만, 어느새 적응되어 간호사 선생님들의 교대시간은 나에게 설렘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어떤 언니가 올까?’

그런데 어린이 병원 중환자실 이다보니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기계소리에 잠을 깨기 일쑤였다. 다시 면회시간이 되어 아버지께서 오셨다. 아버지께서는 회사 일로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내 상태를 살피기 위해 면회시간에 빠지지 않으셨다. 면회시간은 하루에 2번, 그리고 밥을 먹는다고 하면 그 때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때부터는 요령껏 부모님을 불렀다. 면회시간에 밥을 먹었다간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기에 면회 시간을 피해서 부모님을 불렀다. 밥을 먹으면 계속 토하는 대도 불구하고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더 먹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지루함의 연속이었던 중환자실에서의 생활은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고 끔찍해 얼른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선생님만 보면

“선생님! 전 병동으로 언제 가나요?”

하고 묻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가야하는데, 병동에 자리가 없어서….”

이렇게 확신 없는 답뿐이었다. 항상 지루해 할 때쯤이면 일이 생기는 곳이 중환자실이었다.

“저희 좀 도와주세요!”

다급한 간호사 선생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구랄 것 없이 그 주위로 간호사 선생님들이 모였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잠시 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틀을 중환자실에서 보내고 병동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른 환자들에 비하면 적은 시간 중환자실에 있었는데도 나에게 그 48시간은 480시간인 것처럼 길고 지루하기만 했다

며칠 전에 어느 잡지에서 중환자실 간호사 선생님이 쓴 글을 읽게 되었다. 선생님은 중환자실을 ‘네 잎 클로버의 행운보다는 세 잎 클로버의 행복을 바라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중환자실에서는 환자가 일어나 갑자기 걷거나 뛰는 그런 기적 같은 행운보다는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 잎 클로버처럼 환자에게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곳이었다. 살아있음에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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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국문학도를 포기하고, 음악을 선택한 아이. 하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는 아이. 안녕하세요^^ 김빛나입니다. 대학교에서 플루트를 전공했습니다. '독립연대'에서 '활동가'로 근무 중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심리상담가'가 되겠다는 스물다섯의 당찬 아이. 저는 꿈꾸는 아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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