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이너한 인간이며, 때문에 마이너한 취향을 가졌다고 자부한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 주류 대화에 끼지 못해 ‘겉절이’라고 부르는 캐릭터들을 좋아한다. 학창시절 여중 여고에는 여학생들만의 집단 문화가 존재하는데, 그 집단마다 성격이 뚜렷하다. 잘 노는 소위 말해 ‘껌 좀 씹는’ 아이들의 집단이 있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의 집단이 있다. 나는 학창시절 내내 두 집단 어디에도 끼지 않는 아이들의 집단에서 함께 지냈다. 공부를 잘하거나 말썽을 부리거나 해서 선생님들의 주의를 끌지 않는 아이들, 나는 그녀들과 친하게 지내며 마이너한 감수성을 익혀왔다고 믿는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자의든 타의든) 나의 마이너한 취향은 변하지 않았다. 입학하자마자 비주류 중의 비주류인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을 했고, 친구들이 인턴을 하고 공모전에서 입상하고 교환학생을 다녀오며 스펙을 쌓는 동안 또 하나의 비주류 동아리인 여성주의언론사에서 1년가량 글을 썼다.

여성주의언론사의 선배들은 모두 예쁘고 세련된 언니들이었다. 화려한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음악과 미술 분야에 박식하고, 연애 경력을 포함해 다양한 경험들로 다져진 언니들은, 외양에서 풍기는 세련됨 만큼이나 세련된 글을 썼다. ‘소수자의 말하기’를 배우고 글을 쓰고 싶어서 들어간 곳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나는 화려한 분위기에 압도되어버렸다. 동아리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음이 통했던 친구는 채식주의를 하는 친구뿐이었는데, 그녀도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공부 이외의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연애에 서툴렀으며, 투박한 글을 썼다.

말했듯이 친구는 채식주의자였다. 나는 고기를 아주 좋아해서 스스로를 ‘육식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그녀와 만나면 쌈밥이나 산채비빔밥 같이 채식을 파는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한겨울에 광화문에서 만나 채식식당을 찾지 못해 결국 냉면집에 들어가서 육수가 들어있지 않은 비빔냉면을 먹은 적도 있고, 야식을 먹으려다 탕수육 치킨 피자 온통 고기가 들어간 메뉴에 질려 쓴 아메리카노를 나누어 마신 적도 있다. 나는 가끔 그녀를 ‘배려’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를 위한 그녀의 배려도 불편했을 것이 뻔하다. 같이 수업을 듣고 나와 5분 거리의 식당을 엘리베이터를 두 번 갈아타고 빙 돌아와 가야했고, 광화문에서는 ‘계단이 없는’ 채식 식당을 찾아 헤매야 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점차 서로에 대한 배려에 익숙해졌다. 그녀와 학생식당에서 만날 때 자연스럽게 채식주의자 식단이 나오는 날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녀는 어느 날인가 식당까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돌아가는 다른 길을 알아냈다며 내게 알려주기도 했다. 나는 비채식주의자로, 그녀는 비장애인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주류적'인 모습을 자각해 되돌아보게 된 것 같다.

만일 내가 장애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비주류’인 동아리에 가입하지도 않았겠지만) 그녀와 함께 다니는 것을 계속해 불편하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너를 위해 이 정도의 배려를 해주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조금 우쭐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와 지금만큼 가까워질 수 없었을 것 같다.

나는 스스로를 마이너한 인간이라고 자부하며 주류가 아닌 이들과 경험을 공유하면서도, '소수자들의 연대'가 어떻게 가능할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연대는 여성, 장애인, 성적 소수자 등 다양한 소수자들의 경험을 아우를 수 있는 이론이나 장치, 언어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복잡하고 머리 아픈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거시적 측면에서 그러한 작업은 유효할 수 있을 것이나, 개개인이 이룰 수 있는 연대는 실상 간단한 것이다. 누구도 모든 면에서 주류일 수만은 없다. 서로가 가진 다른 형태의 ‘마이너함’을 이해하고 거기에서 기인하는 작은 불편함을 배려하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삶의 ‘주류적인’ 부분들을 되돌아보고, 나아가 바꾸어나가는 것. 이것이 ‘소수자들의 연대’라는 거창한 구호를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발걸음일 것이다.

내가 마이너한 인간이기에 이런 소소한 연대를 꿈꿀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나의 ‘마이너함’을 긍정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마이너한 인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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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화학부 04학번,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진학 예정. 커피와 고양이, 책을 좋아하고 식상함과 무기력을 싫어하는 스물다섯의 귀차니스트. 다년간의 관악산 휠체어 라이딩으로 다져진 팔근육과 연약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지체장애인. '대중의 과학화'를 꿈꾸며 멋진 저술가가 되고 싶은 평범한 과학도. 내게는 일상인 풍경들 속에 나 역시 풍경으로 비춰질까, 부조화한 이방인으로 비춰질가 오늘도 고민-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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