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고 칙칙하기만 했던 나

독립하기 전에 나는 세상에 있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혼자 떠맡은 사람처럼 늘 우울해 하고 한심과 한탄을 반복하며 지냈다.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지 못 해서 가끔 모임 등에 나가면 구석진 자리는 항상 내 차지였다. 간혹 친한 사람들과 만날 때면 하소연하기 바빠서 상대방 얘기에 귀 기울여 듣지도 못 했다.

그렇게 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는 특수학교를 다녔고 중학교는 비장애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녔다. 특수학교에 다닐 때에는 나의 타고난 활동성으로 인해 모든 학교 행사와 프로그램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독립심이 강해서인지 스카우트 활동까지 하며 초등학교 3학년부터 가족들을 떠나 숙박을 하는 캠프에도 빠짐없이 참석하곤 했었다. 내 세상인 것 마냥 학교생활을 해 왔는데 학교 측 사정으로 중고등학교가 지방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중학교 진학은 그 학교에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 추천으로 우리 동네에 위치한 일반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나에 불행이 시작이었다. 그 당시에는 통합교육이 막 추진되는 시점이라서 학교 학생들과 더불어 학교 선생님들도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완전 전무한 상황이었다.

한 선생님은 첫 수업시간에 나를 보자마자 학생기록지를 펼쳐 보시며, “잰 뭐니? 어머 특수학교 출신이잖아! 이런 애가 우리 학교에 왜 왔지? 학교 이미지 안 좋게…”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 눈빛과 말투는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 선생님은 1년 내내 나를 조롱하는 말들과 벌레 보듯 쳐다보는 눈빛으로 내 숨을 막히게 하였고, 가족들도 내가 학교를 다니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1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자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나는 재가 장애인이 되었고, 우울하고 소심한 소녀로 변해갔다. 나는 나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이란 생각에 빠져서 항상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살았다.

독립이 가져 준 것들

그렇게 지내던 나는 독립을 하고 나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독립하고 살아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나를 바꿔야 하는 점이다. 중증장애를 가진 나에게 무엇보다 많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우울하고 소심하기만 한 나를 버려야 하며, 사람들은 우울한 얘기를 마냥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독립을 한 후에 그동안 가장 큰 스트레스가 되었던 이동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또한 많은 활동보조인들과의 경험과 활동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터득하며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에 대한 기술을 알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방법 혹은 소통하는 방법 등을 깨달게 된 후부터 조금씩 성격이 바뀌게 된 것 같다.

나는 변해야 했고. 변하고 싶었다. 변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노력 끝에 이제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밝은 표정으로 나름에 유머를 구사하며 쉽게 친해지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가끔 너스레를 떨며 사교성 있는 장애여성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변화는 내가 독립을 유지하는데 긍정적인 힘이 되었다.

그리고, 좀 전에 어머님한테 전화가 왔다. 활동을 그만두고 일주일 두 번씩 컴퓨터 배우러 다니는 날과 일주일 한번 물리치료 받으러 병원에 가는 날 빼고는 혼자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는 이런 나에게 밖에 나가서 활동하려고 성화이시다. 집에만 있으면 병 생긴다며 물리치료라도 더 받으라고 잔소리를 하셨다. 그렇게 오늘은 그 잔소리가 듣기 싫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 말은 예전 같으면 전혀 들어보질 못 할 말이기 때문이다. 예전엔 일 년에 한두 번 나가는 것도 눈치 보며 나갔는데 말이다. 이럴 때 내가 참 독립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요즘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고민이 많아졌다. 내 글이 독립에 어두운 점만 부각시키는 것은 아닌지, 좀 더 밝고 유쾌하게 글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스러웠다. 왜냐하면 독립을 계획하거나 원하고 있는 중증장애인들에게 너무 부정적인 면만 비춰질까봐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내 글이 그렇게 크게 영향력을 미칠 것 같진 않지만…. ㅋㅋ)

하지만 나는 독립에 달콤한 면만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그 달콤한 면만 바라보고 독립을 하였기에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솔직히 중증장애인 독립은 이제 겨우 설계도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설계도가 완성되고 건축이 시작되어 완성되기까지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치며 수정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중증장애인 독립도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고 고단한 일상을 맞이할 수도 있다. 나는 나만의 경험으로 그 과정을 나누고 싶었기에 즐겁고 유쾌한 일들만 쓸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험난한 길이라 할지라도 독립은 꼭 한 번 도전할 만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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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 나이는 서른 살에 접어들었습니다. 가족들 곁을 떠나서 혼자 독립을 시작한지 6년째 되어갑니다. 남들은 저한데 ‘너 참 까칠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그럼 저는 ‘이 까칠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까칠해질 수밖에 없다고!’라고 답합니다. 이 칼럼을 통해 중증장애여성으로 까칠하게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과 삶의 대한 고민을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앞으로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과 함께 공감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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