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의 일이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고향에 남겨두고 혈혈단신 상경하여 명동성당 인근의 두 평 남짓한 장애인복지사무실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 사무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요, 거기 누구요?”

사무실 직원이거나 건물 관리인이었다면 분명 자신의 신분을 밝혔을 텐데 어찌된 일인지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방금 들어오신 분 누구요?”

재차 물어도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게다가 책상을 뒤지는 소리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당신 누구요? 대답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소.”

간이 큰 도둑인지 경찰을 부르겠다 으름장을 놓아도 마찬가지였다. 책상을 뒤지는 소리만 계속해서 들려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정신없이 112번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신호음보다 내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전화연결이 되는 짧은 순간이 십년처럼 느껴졌다.

“사무실에 도둑이 들어왔어요! 빨리 와주세요! 빨리요!”

잠시 후 순경들이 도착했다.

“대묘파출소에서 신고를 받고 나왔습니다. 도둑이 들어왔다고요?”

“예, 누군가 사무실로 들어와 아무 말도 없이 책상을 뒤지기에 누구냐고 재차 물어도 아무 대답이 없고 수상해서 신고를 했습니다. 방금 전까지도 여기 계속 있었는데 도망갔나요? 얼른 잡아주세요.”

순경들이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그놈은 아직 거기에 있는 것이었다. 순경들이 들이닥쳤는데도 도망가지 않다니 간이 크다 못해 부은 놈이 아닌가.

그런데 두런두런 말을 나누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한 순경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신분을 물어봐도 아무 말 없이 계속 손짓으로만 무슨 의사표현을 하는데 이 분 혹시 청각장애인 아닌가요?”

순간 나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우리는 청각장애인과 사무실을 같이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는 청각장애인 직원 중 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볼 수 없고, 그도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이런 소통의 부재가 생겼던 것이다. 참으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요즘 대한민국은 소통의 부재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고, 서민의 삶은 더욱 더 추락하고 있는 듯하다. 몇 개월 째 계속되고 있는 세종시 사태로 국민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원안이냐, 수정안이냐, 총성 없는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은 살림살이가 궁핍하다 아우성이고, 미래의 희망인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인데, 정치인들은 이러한 상황들에도 아랑곳없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들의 정견만을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강도론’ 발언이 촉발되어 대한민국호는 격랑에 좌초될 위기다.

마치 서로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소통의 부재가 발생했던 두 장애인간의 에피소드 같다. 정치인들이여. 이런 웃지 못할 해프닝은 우리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만으로 족하다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