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겁이 많다. 그냥 많은 것도 아니고 아주아주 겁이 많다. 어릴 적엔 불 꺼진 방에는 혼자 못 있었고 언니들이 들려주는 괴담을 듣고 소리를 있는 데로 질러댈 정도로 겁이 많은 겁쟁이다. 장애로 인한 특성인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잘 놀란다. 이 특성을 아는 사람들은 내가 놀라는 게 재미있는지 일부러 놀라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독립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반대했던 이유 중에 하나이다.

“지나가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무서워하는 애가 어떻게 혼자 살아?”

“혼자 있을 때 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할래?”

그때는 이런 말들이 하나도 안 들렸다. 두려움보다 자유롭고 싶은 맘이 먼저이었기 때문이다. 집을 얻으러 다닐 때도 편의시설 중심으로 보았지 동네 환경은 관심 밖이었다.

다행히 부모님이 좀 많이 무리하셔서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가장 우선으로 이동이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에 넓지는 않지만, 전동휠체어가 다니는데 불편함이 없는 오피스텔로 얻었다. 이동의 편의성을 생각하여 오피스텔로 얻었지만 살다 보니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함이 하나둘씩 생겼다.

가장 큰 불편함은 감당이 안 되는 관리비였고, 오피스텔이기에 도시가스, 전기료 등 장애인 할인 혜택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겨울엔 난방비가 부담스러워 보일러를 거의 틀지 못했으며 최대한 아껴서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까지 들 정도였다. 사실 최저 생계비용인 활동비로 충당하기엔 오피스텔은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피스텔을 선택한 이유는 안전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비원이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중증장애를 가진 여성이 혼자 살아가기에는 세상은 안전하지 못 하다. 나는 장애 때문에도 안전하지 못하며 여성으로서도 안전하지 못하다.

눈앞에서 불이 난다고 해도 가만히 앉아서 지켜봐야 하며 침대에서 넘어져도 다음날 활동보조인이 올 때까지 그대로 버티며 활동보조인이 제시간에 오기를 바라야 한다. 또한, 뉴스에서 여성을 향한 범죄 사건을 들을 때는 문 쪽을 계속 쳐다보며 스스로 괜찮다고 달랜다. 내가 유난히 겁이 많은 것도 있지만 실제로 혼자 살다 보면 어이없는 일들을 자주 경험한다.

지하철을 타면 술 취한 아저씨들에게 너무나도 쉽게 표적 대상이 되거나 술 취한 이웃이 새벽 늦은 시간에 문밖에 있는 초인종을 누르며 문 두들기는 소리는 온몸의 신경세포가 하나하나 서있는 느낌인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 하면 룸메이트를 구할 것을 조언하거나 독립을 포기하라고 한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룸메이트도 아니고 독립을 접으란 말은 더더욱 아니다. 룸메이트를 구했다면 애초에 독립도 안 했을 것이다.

나는 혼자 사는 것이 싫거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다만, 안전적이고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환경을 원하다. 그것은 사회적인 뒷받침이 되어 제도적인 지원 마련과 장애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든다면 지하철 곳곳에 안전요원을 배치한다든가, 119처럼 비상시 언제든지 연락을 하면 달려올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비상시 누구 한데 연락할 것인지 고민이 줄어들 테니까….

얼마 전에 단체 활동을 그만두고 집도 이사를 했다.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좌절을 많이 느끼기도 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하염없이 치솟은 집값과 전동휠체어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게 하는 반장애적인 집 구조, 집주인들에게 냉담을 받으며 거절당해야 했다. 그래서 원하는 지역에 집을 얻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예상치 못한 곳에 급하게 집을 구했다. 집을 구해 놓고 보니 하필 이 지역이 불법 업소 밀집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사하고 약간 늦은 시간에 귀가하여 집으로 오는 길은 화려한 불빛과 더불어 길바닥에는 성매매 관련 업소 홍보 전단지로 쭈욱~ 깔려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지하철 엘리베이터 위치도 외진 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꺼림칙했는데….

이미 이사를 했기 때문에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이 집에서 적어도 일 년을 살아야 한다. 남들이 조언해 준 대로 앞으로 내 귀가 시간은 해지기 전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든든한 애인을 사귀어 ‘보호’ 받으며 살아야 할까?

내가 바라는 것은 해지기 전에 귀가하고 누군가에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보호 따윈 필요가 없는, 마음 놓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안심 살고 있는 그런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날이 오기를 나는 간절히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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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 나이는 서른 살에 접어들었습니다. 가족들 곁을 떠나서 혼자 독립을 시작한지 6년째 되어갑니다. 남들은 저한데 ‘너 참 까칠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그럼 저는 ‘이 까칠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까칠해질 수밖에 없다고!’라고 답합니다. 이 칼럼을 통해 중증장애여성으로 까칠하게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과 삶의 대한 고민을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앞으로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과 함께 공감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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