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봄의 교통사고
스물두해의 봄은 내게 잊히지 않는 날로 기억된다. 그날 이후 내 운명이 바뀌게 된 날이기 때문이다. 1994년 5월 21일, 교통사고를 당했다. 여느 날처럼 출근을 하기 위해 버스를 타려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3차선 멀리에서 파란 트럭이 횡단보도에 다가오더니 나를 들이받았다. 몸이 붕 뜨더니 창문 앞에서 내 머리가 몇 번 돌다가 붕 뜨고는 땅 위로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그리고 잠깐 의식을 잃었다.
다친 부위는 머리와 허리였고, 오른쪽 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정밀검사를 하기 위해 몇 달을 걸려 큰 대학병원에 가게 되었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청력검사를 했고 내 오른쪽 귀가 심각하게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사는 나에게 오른쪽 귀신경이 끊어졌다며 장애인증을 만들라고 했다. 하지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 '안 해요'라고 대답했다. 왜 그랬을까? 순간적으로 장애라는 단어에 심한 거부감이 들었나 보다. 장애를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 같다.
중심 잡기의 어려움
그 뒤 알 수 없는 고통이 뒤따랐다. 지하철을 탈 때도 헤매게 되고 길을 다닐 때도 많이 헤맸다. 중심을 잡을 수가 없어 참 힘들었다. 오른쪽 귀에 수화기를 대면 사람소리가 들리지를 않았다. 왼쪽 귀 하나로 버텨야 했다. 가끔씩 이비인후과에 다니면서 치료를 하였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귀에까지 문제가 있으니 외출하는 게 참 힘들었다.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장애인 등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지 5년이 지난 27세 무렵의 일이었다. 예전의 그 종합병원에 들러 청력검사를 하였지만 의사는 장애인 등록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법이 바뀌어서 양쪽 귀가 다 좋지 않아야만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귀의 청력 수치도 조금은 달라져 있었는데 달리 도리가 없었다.
돌아온 청력
그 후 습관적으로 오른쪽 귀의 청력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다가도 일부러 오른쪽 귀에다 수화기를 대곤 한다. 처음에는 사람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람소리가 조그맣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혼자서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 사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남들에게는 별일 아닐지 모르지만 내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그 뒤로 청력이 서서히 좋아지기는 했지만 정상 수치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통화가 가능할 정도이다. 이 정도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직도 불편한 것
아직도 불편한 점은 남아 있다. 보이지 않는 골목길 어귀에 있는 차량 소리, 내 뒤에 있는 차량 소리를 듣지 못해 어이없는 교통사고도 몇 번 당했고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당시에는 별로 의식하지 못했지만 되돌아보면 모두 좋지 않은 청력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세 돌 반 된 아들이 제법 또박또박 하는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다. 아이의 발음이 서툴러서 그럴 경우도 있겠지만 청력 때문에 제대로 알아듣기가 힘들어 몇 번씩 물어보게 된다. 그래도 아이는 몇 번식 물어보는 말에 화를 내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어른들 중에는 다시 말해달라는 요청에 화를 내는 분도 있다. 결혼 전 직장에 다니면서 어쩔 수 없이 전화업무를 피해야 했던 기억도 있다. 혹시라도 몇 번이고 되물으면 상대방에게 결례가 될까봐 피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도 아주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청각장애인으로 등록을 하진 못했지만 나는 이중의 장애를 겪고 있다. 정신장애에다 청각장애까지 있다 보니 남모를 고충이 많다. 둘 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장애가 아니다 보니 장애 정도는 경미하지만 이해받지 못해 생기는 오해와 갈등이 종종 있다. 그렇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일일이 설명하기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이는 장애만 장애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애도 장애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장애는 참 다양하다.
*칼럼니스트 정미란 님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여성으로서 올해 네 살 된 아들, 남편과 함께 알콩달콩 살고 있으며, 2008년 수필로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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