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당사자가 사회복지사가 되기보다는 그들의 활동을 모니터링해서 질 좋은 서비스를 제도화하고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 한국학점평생교육원

하찮은 장애인 취급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여러 가지 복잡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장애여성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재로서는 가장 두드러진 것이 장애여성이라는 정체성이지만, 집에서는 한 남자의 아내이고, 7살 난 아들의 엄마이기도 하며, 장애와 여성이라는 주제로 틈틈이 글을 쓰는 작가이자 사회변화를 아직도(?) 희망하는 386세대이기도 하다.

단체활동을 하는 즐거움과 어려움이야 한두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나는 단체활동을 하면서 그 어느 순간보다 펄펄 뛰는 심장을 갖고 있고, 살아 숨쉬는 존재임을 확인할 때가 많으며, 것이 아마도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단체활동 중 내가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장애인단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가장 존중받아야 할 대상을 만났을 때 오히려 한순간에 가치절하되는 경험을 할 때이다. 단체활동을 하면서 관련 부처 공무원이나 복지관 종사자들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는데, 그들로부터 하찮은 장애인 취급을 받고 여지없이 초라한 장애인으로 전락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사회복지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하찮은 장애인 취급을 극단적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관련 공무원들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인간성 때문이라기보다는 한국사회의 장애인복지전달체계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사회에서 아직도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권리를 누려야 할 존재가 아니라 보호의 대상, 동정과 시혜의 대상에 머물러 있으며, 우리 자신의 권익을 우리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전문가들에 의해 대변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왜 사회복지사를 못 따는가

그런 이유로 단체활동을 하는 당사자들의 의견은 곧잘 무시되며 현실에 대한 불평, 불만이나 생떼쯤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는 그저 우리를 대변하거나 보호해주는 귀하신 사회복지사들의 하늘같은 결정에 따라야만 하며 이견이 있으면 영락없이 은혜를 모르거나 주제를 모르는 장애인이 되고 만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장애인들의 경우 사회복지사는 가히 장애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얼마 전 한 부처의 공무원과 의견차가 있어 다른 장애여성단체장들과 함께 다소 격앙되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런데 왜 사회복지사를 못 따시는 겁니까?"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 질문에는 분명 사회복지사가 아닌 것이 문제라는 시각이 전제되어 있는데, 도대체 장애인단체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사회복지사 자격이 왜 필요한지 오히려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대로 사회복지사라는 객관적인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 사업 수행 능력 등을 입증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못 따는 게 아니라 안 따는 거거든요! 장애인을 대상화하는 복지전달체계 속에 흡수되지 않겠다는 지향이죠!"

상대 공무원이 충분히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장면은 장애인운동을 하는 우리들에게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장애인을 자격 미달쯤으로 여기는 인식은 그 부처의 공무원 한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사회복지사가 아닌 이유를 굳이 밝혀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지만, 이번 기회에 분명히 해둔다면 다음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복지전달체계가 문제

첫째, 장애인단체 활동을 하려면 사회복지사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사회복지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그들의 노고를 폄하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장애인복지의 주체는 사회복지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인복지의 주체는 당연히 장애인당사자여야 한다. 이제까지 장애인복지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나 장애인당사자가 체감할 수 있을 만큼의 변화를 도모하지 못한 것은 복지전달체계에서 장애인당사자가 배제되었기 때문이었다. 장애인복지의 전문가는 장애를 가진 당사자이므로 장애인당사자가 모두 사회복지사일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현재의 체계로 인해 사회복지사가 과도하게 행사하는 권한을 줄여나가는 것이 마땅하다.

둘째, 불가피하게 자격이 요구될 때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사회복지사뿐 아니라 심리학, 교육학, 여성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성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장애인을 사회복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장애인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하는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장애인 역시 전인적인 존재이기에 여러 차원의 접근과 노력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질 때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사회복지사 개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사회복지사들이 장애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현재와 같은 복지전달체계는 바뀌어야 한다. 복지전달체계가 바뀌지 않는다면 장애인복지를 위한 총량이 아무리 늘어나도 장애인의 임파워먼트에 도달할 수 없다. 장애인을 영원히 복지의 대상으로 머물게 하는 전달체계는 바뀌어야 하며, 우리 힘으로 반드시 바꾸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나는 사회복지사가 아니며, 앞으로도 사회복지사가 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이는 현재 장애인을 대상화하는 복지체계에 대한 저항이자 장애인을 주체로 하는 대안적 체계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적극적인 지향이다. 지난 10년 동안 사회복지사는 넘쳐날 만큼 양산되었으므로 장애인당사자들이 그 사회복지사 대열에 끼어들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당사자로서 사회복지사들의 활동을 모니터링해서 질 좋은 서비스를 제도화하여 장애인도 충분히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하여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지향은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당사자들 개개인에게 매우 중요한 결단이자 비전이 아닐 수 없다. 영원히 복지의 수혜 대상으로 머물 것인가, 주인으로 거듭날 것인가?

*칼럼니스트 김효진은 장애여성네트워크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장애여성으로서의 경험을 담은 자전적 사회비평에세이집 『오늘도 난, 외출한다』(웅진지식하우스, 2006)를 펴냈다.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학사, 2002)과 『우리시대의 소수자운동』(이학사, 2005)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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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은 장애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장애여성 안에도 다양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같은 생각, 다른 목소리"에서는 장애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조금씩 다른 목소리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장애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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