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립을 결심하기까지

어느 덧 부모님 집을 떠나와서 독립한지 6년이 되었다. 내가 독립을 결심한 이유는 복잡하고 다양한 맥락이 있지만 가장 더 이상 가족이 나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점점 커 가는데 우리 부모님은 연세가 드시면서 나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졌으며 반(反)장애적인 집안 분위기는 숨을 막히게 했다.

그런 가족이 세운 대책은 함께 살 수 있을 때까지 살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얼마 정도에 돈과 함께 물 좋고 공기 맑은 시설로 보내는 것이거나, 언니 중 한 명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 대책이 내 운명인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20살이 되면서 조금씩 사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장애인 IL(Independent Living) 운동이 시작될 즘이었고, IL을 접하면서 독립에 대한 막연한 꿈을 가졌다. 그리고 단체 활동을 하면서 점점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바깥에 나와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잦은 외출 때문에 가족들과 마찰도 심해졌다. 왜냐하면 내가 한번 나갈 때마다 3층 집에서 언니들이 업고 올라가고, 내려오고 해야 하기에 나의 외출이 반갑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또한 우리 동네 지하철역에 편의시설이 안 되어 있어서 전동휠체어 타고 언덕길을 넘나들면서 세 정거장이 넘는 거리를 달려서 지하철역을 이용해야만 했다. (지금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다닐 것 같다. -_-;) 가족들은 나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었기에 (사회적으로 중증의 장애는 무능력함과 노동을 할 수 없는 몸으로 인식되기에….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 가족들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노동할 수 있는 몸만 가치 있는 몸으로 인식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구조를 바꿀 고민도 없었고 그렇게 다니다가 나 스스로 포기를 할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단체 상근활동까지 하게 되면서 가족들도 나도 함께 한계가 찾아 왔었고, 틈만 나면 독립하겠다고 말하는 나에게 가족들도 백기를 들고 말았다.

2. 달콤 씁쓸한 독립

2년 넘게 설득 끝에 독립을 하게 되었다. 꿈에도 현실에서도 바랐던 독립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 이상과 현실은 서로 공존하지 못 하였다. 독립을 허락 받은 이후부터 모든 것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 당시만 해도 활동보조서비스는 시범사업으로 진행돼서 지금보다도 더 생활시간이 보장 되지 못했다. 그래서 온갖 자원봉사 단체마다 연락을 하고 찾아가고 사이트마다 글을 올리면서 내가 할 수 있고 알고 있는 자원을 모조리 다 동원했었다.

뭘 믿고 나는 독립한다고 한 것일까? 먼저 독립한 언니가 내가 독립하고 싶다고 했을 때 부정적인 말을 했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활동보조와 자원봉사자는 이틀에 한번은 안 오거나 연락두절 상황이 오곤 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하면서 참 많이 힘들었다.

물론 독립해서 힘든 점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난 몰랐던 것 같다. 아직 사회는 나에 독립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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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 나이는 서른 살에 접어들었습니다. 가족들 곁을 떠나서 혼자 독립을 시작한지 6년째 되어갑니다. 남들은 저한데 ‘너 참 까칠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그럼 저는 ‘이 까칠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까칠해질 수밖에 없다고!’라고 답합니다. 이 칼럼을 통해 중증장애여성으로 까칠하게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과 삶의 대한 고민을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앞으로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과 함께 공감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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