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의 세계는 우리 안에 있어

얼마 전 학교 숙제라며 아들이 사가지고 온 ‘트레버’ 라는 책의 책장을 조금 넘기다 보니 몇 년전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나온 영화의 원작이었다.

독서 감상문을 쓴다면서 책의 내용과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아들과 얘기하며 나는 영화로 보았던 장면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이영화의 주인공인 트레버는 우리에겐 ‘식스 센스’로 잘 알려진 할리 조엘 오스먼트인데, 여전히 성숙해 보이는 표정으로 연기를 완벽하게 잘해 인상에 강하게 남았었다.

이 영화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중학교에 갓 입학하여 첫 수업을 받는 트레버에게 시모넷 선생이 과제를 낸다.

‘세상을 바꾸게 될 아이디어를 내고 세상을 바꿀 것.’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트레버는 덤덤하게 그 과제를 시작한다. 그리고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가다 노숙자들을 보게 되고, 그 중 한 명을 집으로 데리고 온다.

트레버가 생각하는 세상 바꾸기는 바로 ‘도움주기(pay it forward)'.

자기가 세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 그 사람들이 또 각각 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이렇게 자꾸자꾸 퍼져나가게 되면 그것이 곧 유토피아라는 것이었다. 트레버의 반 아이들은 모두 비웃었지만 시모넷 선생만은 "possible" 이라고 했다. 그 가능성의 세계는 우리 안에 있다고 말이다.

도움주기의 어려움

트레버의 첫 도움주기 대상은 노숙자인 제리. 마약중독자인 제리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트레버가 도우려 했지만 결국 그는 다시 마약을 하게 되고 만다. 그리고 다음 대상자는 시모넷 선생님. 혼자 고생하시는 엄마와 시모넷 선생님 두분을 연결시켜 드리고자 한다. 그러나 시모넷 선생과 엄마 두 분 다 나름대로의 상처로 인해 마음을 쉽사리 열려고 하지 않아 또 실패. 마지막 도움주기 대상자로 같은 반 친구인 아담을 정하는데, 다른 아이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는 아담을 도와주려다 겁이 덜컥 나는 바람에 결국 도움주기를 포기하고 만다.

실망에 빠진 트레버. 그러나 다행히도 제리는 우연히 자살하려는 여자를 설득시켜 목숨을 구해줌으로써 다시 도움주기를 시작했고, 시모넷 선생은 엄마와의 사랑을 가꾸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 엄마는 트레버의 외할머니인 자신의 엄마를 용서함으로써 트레버가 모르는 사이 서서히...그렇게 도움주기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트레버의 도움주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널리 퍼져가는 동안 한 방송국 기자가 우연히 어떤 중년신사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이 도움주기에 대한 역추적을 시작하게 된다. 중년신사의 딸이 먼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흑인청년! 그리고 빈민굴의 노파를 찾아내는데, 기자가 찾아낸 빈민굴의 노파는 다름 아닌 트레버의 외할머니이다. 마침내 기자는 트레버를 찾아냈고 방송으로 내보내기 위해 교실에서 촬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촬영을 끝낸 트레버가 학교 건물밖에 나왔을 때 트레버는 세 번째 도움주기 대상자였던 아담이 여전히 맞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촬영을 마친 후라 한껏 기분이 들떠 있던 트레버는 그 장면을 보고는 자신의 도움주기를 완성하기 위해 ‘아담구출작전’을 펼치기로 맘먹는다. 그러나 이 결심은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마는데, 아담을 구하려다가 트레버가 칼에 찔리고 말기 때문이다. 어리디 어린 중학생의 생각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너무도 훌륭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그것으로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떠난 트레버.

트레버를 잃은 엄마와 시모넷 선생이 집에서 멍하니 트레버를 찍은 프로그램을 보고 넋이 나가 있는 동안 트레버의 집 앞에는 트레버를 추모하기 위한 조문객들이 한 손에는 꽃, 다른 한 손에는 불을 밝힌 양초를 들고 하나 둘….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차량들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사람을 보살펴라

“사람을 지켜보고 보살펴라. 그게 사람을 고치는 일이다.”

트레버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이 말은 자신의 이익을 찾는 것에만 급급한 요즘 더없이 필요한 말일 듯하다. 또한 몸이 조금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칫 쓸데없는 아집과 이기심으로 물들기 쉬운 우리네 장애인에게 더욱 필요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온갖 차별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비장애인들보다 좁을 수밖에 없는 우리 장애인들도 한번 트레버의 이 도움주기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생활 속에서 작은 목표를 정해 실천을 시작하자. 작은 목표라 금방 드러나는 효과가 없더라도 나 자신만은 목표를 알고 있고 미미한 효과를 인지할 것이다. 나의 도움주기가 거대한 물방울이 되어 사회를 깨부수지는 못할지라도 잔잔한 물방울이 되어 사회의 한 구석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수 있다. 변화된 사회의 구석구석들이 모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 그 날이 언젠간 오리라. 세상을 바꾸는 힘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정경숙씨는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쉬게 되면서 새삼스레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지체장애여성이다. 중학생인 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글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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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은 장애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장애여성 안에도 다양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같은 생각, 다른 목소리"에서는 장애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조금씩 다른 목소리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장애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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