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중식집에서 열린 '2010년 에이블뉴스 가족모임' 모습. ⓒ에이블뉴스

내가 어릴 때부터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의 빈자리는 많은 책으로 채워졌다. 다량의 독서로 학창 시절 나는 교내외 글짓기 상을 독차지했다. 내가 있는 자리는 늘 빛이 찬란했다. 그래서 이름값을 한다는 얘기도 자주 들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누구도 예측할 수도, 단언할 수도 없다. 열다섯 살이던 어느 날이었다. 눈앞이 흐릿해지면서 넘어지는 일이 잦아 졌다. 어렵사리 찾은 병원에서 원인모를 뇌종양 판명을 받았다. 부랴부랴 서둘러 수술을 받았지만 종양이 너무 컸던 탓에 나는 장애를 얻고 말았다.

중도에 장애를 얻고, 그것을 인정하고, 다시 사회에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4~5년이라고 한다. 나 역시 장애를 인정하지 못하고 ‘왜 하필 나예요?’ 방황하기도 했지만, 보통의 중도 장애인들보다 빨리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학교 진학을 위하여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중학교 중퇴자로 머물러 있었기에 중학교 과정은 한 달 만에 합격하였고, 고등학교 과정은 네 달 만에 합격하여 그 해 바로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모두 부러워하는 명문대에 동갑내기 친구들보다 이른 입학이었다.

그리고 대학시절 잡지에 글을 기고하거나 상담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밥도 자주 사고, 내 용돈벌이를 하면서 나는 장애를 가졌지만, 내 몫을 다하는 아이라고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하였다.

어머니와 외출을 하게 되면,

“어머 따님이 정말 예뻐요! 키도 크고, 얼굴도 하얗고, 갸름한 게…. 저 코 좀 봐! 오뚝한 게 배우 해도 되겠네.”

그런 칭찬을 들은 날이면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엄마 엄마! 내가 진짜 눈만 크면 미스코리아 감인데…. 진짜 난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못하는 게 없어. 나 같은 사람이 팔방미인 맞지?”

“너 정말…. 착각병이 중병이다! 너처럼 뇌 뚜껑을 열면 다 그런 거니?”

언제나 머리를 쥐어박으시며, 핀잔을 주셨다. 하지만 그런 것조차 내 미모를 시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주변의 여러 남자들은 나에게 고백을 해왔다.

내 별명은 ‘까칠 빛나’였다. 친구들과 선후배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쉽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고, 무엇이든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친구들은 교수님께 할 건의사항을 나에게 말해주기도 했다.

“빛나야! 네가 바른 말 잘하니까 네가 총대 메라. 넌 조리 있게 말 잘 하니까 교수님도 너 못 당한다고!”

그럼 교수님들은 못 이기는 척 하시며 내 말을 다 들어주셨다.

나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난 줄 알았다.

지난 2일, ‘에이블뉴스 가족모임’이 있었다. 에이블뉴스 직원, 객원기자, 칼럼니스트들이 모여 대화도 나누면서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말 한 마디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나보다 힘든 환경에서도 더 똑똑하고, 잘난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결국 조용히 밥만 먹고 일어섰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계속 기죽어 있는 나에게 아버지께서,

“빛나야 그래도 너는 스물다섯에 이 정도의 위치에 와 있으니, 10년, 20년 후엔 그 사람들보다 더 훌륭할 수 있을 거야!”

그 말도 아버지의 격려일 뿐, 나는 온몸이 힘이 쭉 빠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이 말처럼 사람 역시 커질수록 겸손해 지라는 뜻이다. 세상에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없듯, 아무리 잘났어도 자만하고 오만하면 자신에게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착각의 늪에서 헤어나 나보다는 남을 높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세상을 좀 더 넓게 보자! 별이 빛나는 밤에….’

“여보세요! 언니 잘 지내? 나 별이….”

별이(가명)는 재활운동을 하면서 만나게 된 동생이다. 나와 똑같은 소뇌 종양으로 장애를 얻게 되었다. 올해 스무 살로 나에게 ‘언니! 언니!’하면서 잘 따라서 연락도 자주 하고 집에도 자주 놀러온다. 그런 별이가 한동안 연락이 없었는데 전화가 오니 매우 반가웠다.

“언니 나 대학 갈려고 공부하는데…, 검정고시 몇 점이나 받아야 좋은 학교 가?”

이번 4월에 암기과목 4과목을 시험 보고, 8월에 나머지 4과목을 보겠다는 별이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별이의 저돌적인 말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어머니께 전화를 돌렸다. 한참동안 별이와 별이 어머니와 통화하신 어머니께서는 한숨을 쉬며 방으로 돌아오셨다.

“휴~, 뇌 뚜껑 열었던 애들은 다 그러니? 별이도 착각병이 중병이더구나!”

초등학교 때 아팠던 별이는 아직도 SKY대를 운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라삭스라고 한다.'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한 말이다.

오는 4월에 검정고시를 보는 별이에게 지금 내가 언니로서 해 줄 수 있는 일은 시험 잘 보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 시험이 끝난 후에 가벼운 마음으로 라일락 꽃향기를 맡으며 우리의 봄날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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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국문학도를 포기하고, 음악을 선택한 아이. 하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는 아이. 안녕하세요^^ 김빛나입니다. 대학교에서 플루트를 전공했습니다. '독립연대'에서 '활동가'로 근무 중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심리상담가'가 되겠다는 스물다섯의 당찬 아이. 저는 꿈꾸는 아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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