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인사가 늦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캠퍼스 라이프’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쓰게 되었습니다. 작년 한 해 부족한 글을, 게다가 성실하게 연재하지도 못했음에도 늘 관심 가져주시고 격려와 질책 해주신 독자 여러분들, 에이블 뉴스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처음 글을 쓸 때에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장애인 대학생이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들을 발랄하게 풀어내면서도, 장애인 대학생의 교육권, 취업, 문화생활과 같은 다양한 이슈들을 진지하게 엮어내고 싶었는데 맘처럼 잘 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올해 쓰게 되는 칼럼은 작년에 부족했던 점을 보충하며, 새로운 화두들을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늘 소재 탓을 하던 저의 게으름에 채찍질을 하기 위해, 올해엔 칼럼마다 영화나 책 한 권 정도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 주인공 제이크 설리는 형 대신 행성 '판도라' 탐사 임무를 위해 탐사선에 올라탄다. ⓒ20세기폭스 코리아

영화 <아바타>가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타이타닉>을 제작한 제임스 카메론의 신작으로 주목을 받은 이 영화의 주인공 제이크 설리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휠체어 장애인은 대부분 나약하고 수동적인 모습인데 반해, <아바타> 속의 주인공은 새로운 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활동하죠. 굵은 팔뚝을 불끈거리며 탐사선 안으로 휠체어를 밀고 들어가는 뒷모습, 휠체어에서 링크 머신으로 힘있게 옮겨 앉는 모습 등이 현실적으로 묘사되어서 더욱 흥미 있게 보았습니다. 주인공은 행성 토착민의 DNA와 인간 DNA를 결합해 만든 ‘아바타’를 통해 장애를 가지지 않은 몸을 얻게 됩니다.

진보된 과학 기술을 통해 ‘인공 신체’를 갖는 장애인의 이야기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써로게이트> 역시 ‘인공 신체’가 상용화된 먼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죠. 영화에서 써로게이트 시스템을 제작한 박사 역시 휠체어 장애인입니다. <아바타>에서 ‘인공 신체’가 새로운 행성을 탐사하기 위한 도구였다면, <써로게이트>의 ‘인공 신체’는 좀 더 솔직합니다. 젊고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싶어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지요.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것이, ‘인공 신체’가 상용화된다면 가장 큰 수혜자는 장애인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아바타>와 <써로게이트> 스토리 전면에 장애인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를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써로게이트>의 한 장면. '인공 신체'인 써로게이트(surrogate)를 발명한 이 역시 장애인이다.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혹은 규정하고 있는 ‘장애’란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장애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즉 가치중립적인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장애로 인한 차별과 나쁜 것이고, 장애로 인해 형성된 문화는 좋은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 자체는 우리가 부정해야 할 ‘나쁜 것’이 아닐뿐더러, 어떤 장애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축복’ 역시 아닙니다. (적어도 저에겐 그렇습니다.) ‘인공 신체’를 가진 장애인이 등장하는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장애’의 개념이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장애인 운동이 한국 사회라는 수면 위에 떠오르기 전까지 장애는 부끄럽고, 감추어야 하는 것, 극복해야 하는 것이며 따라서 나쁜 것이었죠. 하지만 이제 우리는 장애로 인한 다양한 몸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인공 신체’가 상용화된 미래에 또 우리는 장애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인공 신체’를 만드는 과학기술과 자본이 결탁해 “인공 몸을 가지지 않은 장애인=루저”라는 공식이 받아들여지는 끔찍한 사회를 상상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어쩌면 인공 신체와 자연적인 신체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정말로 "다른 몸의 차이가 다양성으로 인정되는" 세상을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새해 첫 글부터 공상과학소설에 등장할 법한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2010년은 아주 먼 미래라고 생각했거든요. 2010년에는 우주선으로 화성에 마실을 나가고, 웜홀을 통해 자유롭게 시간 여행을 하고, 어쩌면 나는 건강한 다리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바로 그 미래가 되었는데 아직 화성 우주선도, 웜홀도, 건강한 다리도 더 먼 미래의 상상화를 통해 그릴 수 있을 뿐입니다. 다만 우리는 변화하는 사회의 새로운 상을 여전히 꿈꿀 수 있습니다. 장애의 개념은 다른 개념들처럼 역사 속에서 계속해 변화해왔고, 아마도 계속 변화해갈 것입니다. 2010년은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올 해 칼럼을 통해, 새로운 상상력을 가지고 제가 속해 있는 공간을 조금은 낯설게 조금은 엉뚱하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낡은 휠체어를 가지고, 탐사선에 올라서는 <아바타>의 주인공처럼 힘차게 캠퍼스 속을 헤엄치고 싶습니다. 올 한 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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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화학부 04학번,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진학 예정. 커피와 고양이, 책을 좋아하고 식상함과 무기력을 싫어하는 스물다섯의 귀차니스트. 다년간의 관악산 휠체어 라이딩으로 다져진 팔근육과 연약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지체장애인. '대중의 과학화'를 꿈꾸며 멋진 저술가가 되고 싶은 평범한 과학도. 내게는 일상인 풍경들 속에 나 역시 풍경으로 비춰질까, 부조화한 이방인으로 비춰질가 오늘도 고민-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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