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구 시원하다, 어이구 시원해!”

뿌연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온탕에 노곤한 몸을 담그자 높은 물 온도임에도 불구하고 시원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와 높은 천장을 타고 커다랗게 울렸다. 부력으로 몸이 둥실 떠오르면서 마음까지 두둥실 떠올랐다. 나는 오랜만에 외박 나온 둘째 녀석과 함께 간만에 찜질방 나들이를 나와 물고기처럼 한가한 겨울오후를 보내는 중이었다. 두 눈이 스르륵 기분 좋게 감겼다.

예전에는 문틈으로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한쪽 옆구리에 수건 한 장 끼고 다른 쪽 옆구리엔 아들 녀석의 듬직한 팔을 끼고 동네 목욕탕을 다녀오곤 했는데 요즘은 좀처럼 그런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첫째 아들은 공군장교로, 둘째 아들은 육군 장교로, 두 녀석 모두 나라의 부름을 받아 둥지를 떠나 있기 때문이다. 아들들의 든든한 엄호가 없으니 목욕탕을 향하는 발걸음은 자연히 뜸해질 수밖에 없다.

시각장애인에게 혼자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는 일이란 심청이가 인당수에 뛰어드는 것만큼이나 막막하고도 애처로운 일이다. 설령 목욕탕 입구까지는 어찌어찌 발 딛으며 찾아간다 해도 그 다음부터가 본격적인 고난의 시작이다. 빼곡히 늘어서 있는 신발장의 빈자리를 찾는 일이며, 일반인들도 한참 눈 어름을 하면서 찾기 마련인 신발장 번호와 일치하는 옷장 번호를 찾는 일, 새끼손톱만한 열쇠구멍에 열쇠를 끼워 맞추는 일까지, 아직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혀보지 못했는데도 한증막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진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간혹 운이 좋아 친절한 종업원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그럭저럭 옷을 집어넣고 옷장의 열쇠를 다시 채울 수 있지만, 종업원이 로마황제의 하인마냥 탕 안까지 따라와서 시중을 들어주지 않는 한, 입욕실에서 부터는 거의 속수무책이 된다. 게다가 과거의 목욕탕은 샤워 대와 냉탕, 온탕 정도의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어 더듬거려야 하는 창피함만 무릅쓰면 그런대로 이용은 가능했지만, 최신시설을 자랑하는 요즘의 사우나 실에는 뭐가 그리 복잡하고 많은 지 발걸음을 옮길 엄두가 차마 나지 않아 문 앞의 애꿎은 타일바닥만 발바닥으로 쓰다듬기 일쑤다.

그러다 어렵게 용기를 내어 황제탕이든, 한방탕이든, 옥탕이든, 쑥탕이든, 하다못해 냉탕이라도 한번 찾아가 볼라 치면 입욕객의 젖은 맨살과 어김없이 부딪히게 되고, 간혹 그들의 신성한 부위라도 건드리게 되는 날이면 넓은 욕실 안에는 온갖 거칠고 심한 욕설이 낭자하게 울려 퍼진다. 그렇게 욕 세례로 목욕을 하여 흥건해진 마음과 구겨진 자존심을 추스르며 되돌아나갈 출입문을 찾아보지만 당황한 까닭에 방향감각은 이미 놓친 지 오래다. 꼬인 발로 성급히 움직였다간 물 흐르는 타일바닥을 헛딛고 미끄러져 뇌진탕 신세가 될 지도 모르는 일. 그렇게 목욕비의 본전도 못 뺀 채, 황급히 옷을 꿰어 입고 신을 구겨 신고 찬바람 부는 거리로 쫓기듯 나오고 나면 채 마르지 않은 몸에 으슬으슬 한기가 돈다.

우리나라에도 독일이나 일본처럼 가족탕이나 혼탕이 있다면 아내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을 텐데, 현실은 요원하기만 하다. ‘울며 겨자먹기’로 집구석의 좁은 욕탕에서 시원찮게 나오는 샤워기에 몸을 맡겨 보지만 뜨거운 온수가 넘쳐흐르는 널따란 탕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바늘만한 구멍만 숭숭 뚫려있는 샤워기가 영 미덥기만 하다.

이제 며칠 있으면 성탄절이라고 이 거리 저 거리에서 캐럴송이 울려 퍼지고 있다. 나는 아기 예수님 목욕시켜드리는 종교의식을 생각하다가 나의 못내 아쉬운 목욕탕 기행이 불현듯 떠올라 입가에 쓴웃음을 짓고 있는데 현관문이 벌컥 열리더니 둘째 녀석의 우렁찬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아버지, 외박 나왔습니다. 그동안 잘 계셨어요?”

더욱 늠름해진 아들은 나를 보자마자 편찮은 곳은 없는지, 도와드릴 일은 없는지 묻기에 바쁘다. 나는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아들의 마음을 덥석 잡았다.

“막내야, 아빠랑 목욕 갈래?”

“네, 아버지!”

아들은 군대식 억양으로 시원하게 대답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우리는 곧바로 찜질방을 찾았다. 올 겨울 들어 처음 찾은 목욕탕이었다. 나이테를 몇 겹 두른 탓인지 근질근질 거리는 몸에 뜨거운 물을 두어 바가지 끼얹은 뒤, 곧바로 온탕에 두발을 담갔다. 그리고는 뱀이 스르륵 미끄러지듯 몸을 서서히 뜨거운 물속에 밀어 넣었다. 수위가 목까지 차오르자 탕 속에 가득 차 있던 물이 폭포처럼 흘러넘쳤다.

“어이, 시원하다. 어이구, 시원해.”

내 입에서 시원하다는 말을 연방 흘러나왔다. 너무 좋은 나머지 정신이 아득해 지기까지 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신음 같은 감탄사를 나지막이 흘렸다.

“아, 좋다!”

탕 속에서 몸을 한참 불리고 나오자 작은 녀석이 바람만 불어도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각질을 육중한 손바닥으로 박박 문지르기 시작했다. 녀석의 손힘이 얼마나 센지 내 몸이 좌우로, 위아래로 들썩들썩 거렸다. 나는 그렇게 오고 싶었던 목욕탕에 기어이 오게 되어서인지, 아니면 등을 통해 새삼스럽게 맛보게 된 아들의 성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척이나 행복한 기분이 되었다. 내 몸을 구석구석 문지르던 녀석이 한마디 불쑥 내뱉었다.

“아버지, 외박 자주 나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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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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