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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조호근의 노동 사랑방 연재를 시작하며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0-01-18 11:33:38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에게 명함을 건네주면, 적잖게 놀라는 모습이 재미있다. 비장애인인 그들에게 장애인단체는 생소할 것이고, 프로그래머나 컴퓨터 전문가로 알고 있던 내가 갑자기 장애인단체에 근무하고 있다니, 놀랄 만도 할 거다. 게다가 노동상담을 한다는 말에는 기가 찬 모습들이다.

내 전공은 수학이다. 취미나 적성과는 전혀 무관하게 선택한 학과였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력고사를 봤던 1984년도는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시대여서, 원서를 냈던 대학교에서 중증장애인 이과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수학과뿐이었다.

별로 흥미 없는 수학을 공부하던 2학년 초, 학교 전산실에 IBM 컴퓨터(XT)가 들어왔다. 당시에는 아직 전산과가 없을 때여서 수학과가 전산실 관리를 했는데, 자연스럽게 컴퓨터실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점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컴퓨터 동아리 활동을 하는 사이에 어느덧 4학년 2학기가 되었고, 다른 학생들처럼 취업 때문에 고민하게 되었다.

그동안 쌓아온 컴퓨터 실력에 자신(?)이 있던 나는, 당시에 대기업 중에서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업체인 쌍용컴퓨터 등 10개 회사에 원서를 냈고, 이 중에서 한 곳의 서류전형에 합격을 했다. 하지만, 서류전형에 합격한 곳에 면접을 보러 가서 나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면접은 4명이 한조가 되어 면접관들 앞에서 면접을 보는 것이었는데, 내가 들어갈 때 놀라는 면접관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뚜렷하다. 다시 내 이력서를 보면서 옆의 면접관과 귓속말을 주고받는 모습과 내 위아래를 훑어보는 따가운 시선에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연히 나는 면접에서 떨어졌고, 나중에 알았지만 그 회사에서는 내가 장애인인줄 모르고 서류전형에 합격 시켰다는 것이다. 이력서의 군 면제에 체크하고, 면제사유에 지체장애라고 썼고, 자기소개서에도 있었지만 지원자가 많아 대충 보다 보니 못 본 것 같았다. 어쨌든 나의 첫 번째 직장도전은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나는 첫 실패에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여 직장은 포기하고 컴퓨터 프로그램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1년 동안 과외를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 그리고, 당시 컴퓨터의 메카였던 종로 세운상가에 가서 6개월간 하드웨어 관련 기술을 배워서 1990년 11월 서대문구 홍제동 대로변에 15평쯤 되는 컴퓨터 판매 및 프로그램 개발회사를 차렸다. 당시에는 비디오 대여점이 막 생겨나고 있을 때여서, 비디오대여점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컴퓨터와 함께 판매를 하고, 개인을 상대로 조립컴퓨터 A/S와 판매를 했는데 2년 동안은 생각보다 잘 되서 자가용도 구입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자신을 컴퓨터 학원원장이라고 소개하면서 PC를 대량으로 구입하겠다는 사기꾼에게 속아서 거액을 손해보고 나니 의욕이 상실되어 사업을 정리했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사업도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

회사를 정리하고 다시 과외를 하면서, 학원강사 쪽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과외는 내가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낭비되는 시간이 너무 많았고, 비가오거나 눈이 오면 힘들었기 때문에 학원강사가 낳을 것 같아서였다. 여러 곳의 학원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 면접에서 계속 거부당했다. 서서 강의하기 어려울 것 같고, 학생들이나 학부모가 싫어할 것 같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기가 생겨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알아보다가, 고등학교 대선배가 운영하는 입시학원에 취업이 되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몸 상태가 좋아서 목발을 한쪽만 짚고도 근거리는 보행이 가능할 때여서 칠판에 판서가 가능할 때였다. 학원강사로 1년을 지내다가, 친하게 지냈던 대학교 같은 과 선배에게 회사에 취직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1995년 2월 학원을 그만두고 비파괴검사회사의 부설연구소에 프로그래머로 입사했다.

사장님은 면접에서 우리 회사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며 열심히 해 보라고 하셨고, 그곳에서 1년여에 거쳐 「방사선투과사진의 저장관리시스템」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우수사원 표창도 받았다. 참고로 비파괴검사란 화학공장의 배관이나 저장탱크 등의 내부 상태를 방사선이나 초음파 특수약품 등을 사용해 파괴하지 않고 검사하여 안전진단 및 잔존수명을 예측하는 것을 말하며,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은 방사선 촬영을 한 필름을 산업용 드럼스캐너를 통해 PC로 읽어 들여 저장해서, 필요할 때 원하는 부위의 필름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비파괴 검사회사에서 근무하면서 교회 청년부에서 처음 만났던 아내와 결혼도 했고, 아들만 셋을 낳았다. 1998년 가을부터 사업을 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내안에서 다시 꿈틀거렸지만, 자금이 없어 실행해 옮기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지금 회사에 소개시켰던 선배가 내 사업계획을 듣더니 자기가 자금을 대주겠다고 하여 그해 12월 사직서를 내고 선배 사무실에 독립된 공간을 얻어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다. 4개월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NOTEINFO(현재 메일주소가 이 사업을 하면서 만든 것이다)라는 노트북 정보제공과 판매를 하는 사이트를 1999년 5월에 오픈을 했지만, IMF로 인해서 큰 타격을 입었고, 선배사업도 힘들어져 2000년 8월말 선배 사무실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사업역시 실패였다.

다시 과외와 학원 강사를 하면서 오랜만에 남는 시간이 생겼고,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해보고 싶던 차에, 전도사로 있는 후배를 통해서 인천의 장애인봉사단체를 알게 되었고, 그곳의 장애인 회원들을 대상으로 컴퓨터를 가르치게 되면서 많은 장애인들과 만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중증장애인이지만 장애인과 어울려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를 거치는 동안 장애인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휠체어를 타고 컴퓨터를 배우러 온 비슷한 또래의 여자 회원과 사무실에서 식사를 하는데 찌개를 전혀 먹지 않는 것을 보고 ‘왜 안 드세요? 안 좋아하세요?’ 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뜻밖에도 그녀의 대답은 화장실 때문에 밖에 나오면 물이나 수분이 많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너무 미안해 어쩔 줄을 몰랐던 일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 일을 생각하며 차를 세워놓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2003년 10월 나는 잠깐이라도 장애인계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장애인중심기업협회에서 장애인계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곳에서 처음 맡은 일이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만드는 일이었고, 그 일이 끝난 후 얼마 있다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로 옮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몇 달 만 있다가 다시 과외나 학원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아직까지 근무하게 되었다.

2006년부터 장애인노동상담센터를 맡아서 운영하면서 수많은 장애인들을 만났다. 그분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으며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내 자신에 낙심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문제를 해결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뿌듯한 때도 많았다. 이것이 힘들어도 쉽게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덧 장애인계에 들어온 지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만남과 경험은 나를 조금씩 바꿔 놓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2010년 새해도 벌써 보름이나 지났다. 에이블뉴스에 칼럼을 시작하며, 내 안에서 잠자고 있던 가슴 뛰는 삶에 대한 열망을 깨워서,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을 꿈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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