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한 중증장애인들로서는 설 명절을 앞두고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사진은 발가락으로 휴대폰 문자를 주고받으며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중증장애인 정명근 씨. ⓒ서혜영

중증장애인에겐 너무 긴 연휴

2010년 새해를 맞이하여 한해를 어떻게 보낼지 각종 계획을 세우며 각오를 다질 요즘 중증장애인들은 걱정이 많다. 가족과 함께 살지만 활동보조 없는 긴 연휴는 내 생활에도 많은 제한을 준다. 하지만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며 자립생활 중인 여러 중증장애인들은 활동보조인이 없는 긴 연휴를 보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며, 앞으로 닥칠 설 명절 보낼 일이 큰 걱정이다. 장애인에게는 그림자와도 같은 활동보조인들도 긴 연휴와 명절에는 대부분 가족, 친지들과 함께 보내려 하기 때문이다. 가령 한 달에 100시간 활동보조서비스를 한다고 할 때 고작 60만원의 보수를 받으면서 연휴나 명절날까지 일을 하고 싶진 않은 것이다.

내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중증장애인 중 한 사람인 정명근 씨는 주로 누워서 생활한다. 음식물도 잘 씹지 못하고 언어로 대화도 전혀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는 가족으로부터 독립해 현재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아마 활동보조서비스가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지만 그는 지금 행복한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언어장애가 있는 정명근 씨의 의사소통법은 독특하다. 'yes'라는 의사는 다리를 위로 올려서 'no'는 좌우로 흔들어서 표현한다. 간혹 긴 대화가 필요할 때면 핸드폰에 발가락으로 문자를 찍어서 보여준다. 밥은 누운 채로 활동보조인이 먹여 주며 배변은 하루에 한 번 관장을 해야 한다. 그런 그의 자립생활은 활동보조인이 자꾸 바뀌거나 긴 연휴와 명절 때 가장 힘들어진다.

단답형으로 대화하지만

정명근 씨와 같은 중증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서비스를 하려면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중증장애인의 장애 정도와 특성에 맞는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정명근 씨에게 서비스를 할 때에는 모두 단답형 질문으로 해야 한다. 간혹 긴 대화가 필요할 때는 느려도 휴대폰에 문자를 주고받으며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것이다.

"밥 드실래요?"

"김치 드려요??"

"추워요?"

"물 드실래요?"

정명근 씨의 활동보조 서비스 시간은 '평일-오전, 오후'와 '주말-오전. 오후'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한 달에 배정받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식사 시간마다 각기 다른 활동보조인이 온다. 하루 세끼 모두를 해결하기에는 서비스 시간이 충분하지 못해 평일에는 한 끼를 굶어야 할 때가 많다. 특히 주말에는 활동보조인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하루 종일 굶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명근 씨는 시설에서 살거나 가족에게 의존해 살기보다 혼자서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고 책임감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자립생활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여기고 있다.

24시간 서비스가 필요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면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고 있는 내게도 어려움은 많다. 지난 연휴 내내 아파서 누워 있다가 방송 출연 때문에 부득이하게 외출을 앞두고 있지만 아침 10시 방송 스케줄에 맞춰야 할 일이 꿈만 같다. 활동보조인 출근시간은 10시인데 폭설로 인해 엄청 미끄러운 길을 어찌 헤치고 가야 할지 걱정이다. 출근시간임을 감안하면 아침 8시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장애인 콜택시가 제 시간에 와줄지도 미지수라 까마득하기만 하다. 새해 첫 외출인데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니 한숨부터 나온다.

2010년에는 활동보조 예산의 문제로 신규신청을 받지 않는다는 소식이다. 중증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을 위해서는 활동보조서비스 시간이 늘어나도 시원치 않을 텐데…. 더구나 정명근 씨와 같은 중증장애인들로서는 24시간 서비스가 보장되어야만 진정 기쁘고 행복한 자립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곧 설 명절도 다가오는데 자립생활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우리 중증장애인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칼럼니스트 서혜영은 글쓰기를 통해 자아실현에 다가가고 있는 루게릭 장애여성이다. 힘들고 빡빡한 세상살이에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호탕하게 헤쳐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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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은 장애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장애여성 안에도 다양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같은 생각, 다른 목소리"에서는 장애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조금씩 다른 목소리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장애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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