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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미물들의 세계를 꿈꾸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9-12-28 09:31:21
내 고교동창은 ‘미물론’을 제창했다. 무더운 여름의 어느 날 선풍기가 돌아가던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하며 앉아 있던 그때,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았던 서너 명이 인터넷에 작은 게시판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제법 부유한 집에서 자랐고 성적도 좋은 편이었던 한 친구가 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에 〈미물론〉이라는 글을 그곳에 올렸다. 미세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뜻의 미물(微物)이란 단어를 설명하며 그녀는 우리 반 학생들 가운데 ‘미물’들을 골라냈다. 사실상 다수가 미물에 속했는데 체력이 약하거나 외모가 형편없는 경우, 성격이 내성적이라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 성적이 낮아 좋은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경우 등이 포함되었다.

그녀의 글은 당시에도 아주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우리 중에서 누구도 그 작은 교실에 ‘미물’로 분류되는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부유하고 매력적이고 운동을 잘하거나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그들만의 세계를 형성하고는 했다. 그 세계는 고등학교 교실에 국한되지 않았다. 졸업한 이후에도 성적이 좋지 않고, 못생긴 외모를 가졌고, 성격이 소심한 아이들은 대개 세상의 구석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들이 실제 어떤 재능을 가졌고, 얼마나 큰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 ‘미물’로 낙인찍히면 영원히 그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장애인은 바로 그 ‘미물’의 대표적인 존재이다. 사회적 계급이 없어진 시대에 아름답고 건강한 몸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렇지 못한 몸의 극단에 장애인이 있고, 그 가운데 무수히 많은 몸들이 있다. 유약한 몸, 병에 걸린 몸, 추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몸, 가난에 찌든 몸. 그러한 몸을 가진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나 또한 그 모든 낙인들이 빨간 도장으로 새겨진 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주 오랜 기간 노력했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 ‘미물’로 분류된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쿨하게’ 세상과 대면해왔다. 장애인들은 장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로, “나는 장애인이지만 얼마든지 행복하고 내 장애를 사랑하며 내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한다”라고 말하며 살아왔다. 우리가 자기 마음을 단련하고, 타인에게 감사하며 사는 삶은 분명 아름답다. 그런 태도는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이 순간도 어딘가에서 작성되고 있는 ‘미물’의 목록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나는 이제 우리가 우리 내부에서 끓고 있는 어떤 뜨거운 것들과 정면으로 마주했으면 좋겠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 나아가 이 사회에서 열등하고 가진 것 없는 자로 묘사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순수함’. 어떤 모욕과 시선에도 항상 당당하고 ‘쿨’해야 한다는 우리 내부와 외부의 요구. 그것들이 정말 우리를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것인가?

장애인 그리고 이 사회에서 격리되어 있는 수많은 ‘미물’들은 모두 뜨거운 피가 흐르는 존재이다.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하고, 성공을 욕망하고, 상대의 멸시와 모욕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인간의 욕망과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가 한쪽 뺨을 때리면, 그 힘에 굴복해 나머지 뺨을 내밀면서도 “그래, 나는 참 쿨하고 착한 사람이다”라고 위안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세계는 병약하고 느린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주제넘게 굴지 말라고 충고했다.

나는 이제 ‘야한’ 장애인, 뜨거운 인간이 되고자 한다. 내 피는 지금 이 순간도 찬란한 태양아래서 세상과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세상과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라고 부추긴다. 절대로 ‘싸가지 없이’ 굴지 못했던 미약한 존재들, 그래서 세상에서 영원히 찾아주지 않을까 봐 자신을 숨겨야 했던 존재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조차 쉽게 할 수 없었던 존재. 그런 우리는 쿨하기(cool)보다는 오히려 뜨거운(hot) 존재가 되어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획득한 자만이 ‘야한 장애인’, ‘야한 미물’이 될 수 있고, 그러한 자만이 그 권리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

어느덧 2009년이 저문다. 장애인들이 ‘나쁜’ 장애인을 넘어 ‘야한’ 장애인이 되고자 가장 뜨겁게 투쟁했던 2000년대가 지는 것이다. 나는 지난 10년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하는 동안, 그렇게 뜨겁게 자신의 욕망과 권리에 대해 말한 사람들에게 빚진 삶을 살았다. 이제 다가오는 새로운 십년, 나는 그 십년을 나 스스로가 ‘야한 장애인’이 되는 시대가 되기를 희망한다. 20대를 일년 앞두게 될 새해, 나는 그러한 것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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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원영 (g-restorat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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