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가 가족, 친구들을 위한 날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연인을 위한 특별한 날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각종 콘서트, 놀이공원에서 연인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열고, 특별한 날 둘 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연인들 덕에 분위기 좋은 호텔이나 레지던스 등은 한 달 전에 이미 예약이 마감되었다고 한다. 소비가 주가 된 크리스마스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정말 특별한 날이어야 한다. 거리를 뒤덮는 반짝거리는 조명들, 흘러나오는 신나는 캐롤 음악들,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라고 하니 흰 눈까지 내려준다면, 1년 중 그보다 더 로맨틱한 날이 있을까!

여기에 한 게이 커플이 있다. 뚱뚱한 남자는 날씬한 남자를 ‘곰탱이’라 부르고 날씬한 남자는 뚱뚱한 남자를 ‘우리 돼지’라고 부른다. 날씬한 남자의 취미는 연인을 위해 화장품이나 옷을 사서 그에게 선물하는 것이고, 뚱뚱한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연인의 거칠지만 따뜻한 손을 잡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손을 잡고 쇼핑을 해 본적이 없다. 여자인 친구들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종종 쇼핑을 한다고 하지만, 두 남자가 손을 잡고 쇼핑을 하는 일엔 단 하나의 ‘비정상적인’ 관계만이 부여된다. 날씬한 남자는 연인과 쇼핑을 하며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자를 골라 직접 씌워주고 “우리 돼지, 모자가 정말 잘 어울려”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이성애자일 것이 분명한 점원 앞에서 그렇게 말해줄 수 없다. “외국에서 들어온 친구인데요, 한국 지리에 서툴러서..” 변명처럼 덧붙이는 그 말 뒤에 따라온 한숨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늘 그래왔듯 그들은 이번 크리스마스에 뚱뚱한 남자의 방에서 보낼 것이다. 수많은 이성애자 커플들의 날인 크리스마스에, 그들에게 자유로운 공간은 오직 그 곳뿐이다.

모든 연인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에이블뉴스

또 한 장애인 커플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연인이라는 사실을 가장 가까운 사이의 친구들도 알지 못한다. 둘이 함께 있을 때 그들은 행복하고, 어떤 연인들보다 자유롭지만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그들을 향해 꽂히는 시선들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 없다. 아래로 내려 꽂히는 시선들, 그 심리적인 부자유만큼이나 물리적인 제약들도 그들을 제약한다. 수많은 카페, 레스토랑, 영화관 앞의 물리적인 턱들은 어떻게 넘어서야 할까. 남자는 여자에게 멋있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은데, 직원들에게 휠체어 채로 들려 계단을 올라가거나 손발이 오그라드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리프트를 타고 계단을 내려오던 장면은 멋있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 짧은 원피스를 입고 나온 여자는, 남자 직원의 등에 업혀서 계단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어색하고 불편한 순간들로 가득한 외출 후에 그들은 밖에서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 역시 수많은 비장애인 커플들이 가득할 거리를 피해, 이번 크리스마스는 남자의 좁은 자취방에서 보내기로 했다. 좁은 자취방에서 와인을 마시고, 크리스마스 케익을 먹고, 만화책을 보며, 캐롤을 들어도 여전히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이어야 한다.

드라마나 소설 속에 나오는 연인들을 생각해보자. 분명 그들은 남자와 여자일 것이고, 연애인 급의 외모를 가진 비장애인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드라마틱한 장면을 어떻게 소화해낼 것인가. 돼지 저금통을 안은 뚱뚱한 남자가 날씬한 남자에게 “애기야, 가자”라며 손을 잡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 휠체어를 탄 남자가 여자의 집 앞 담벽에 그녀를 몰아세우고 터프하게 키스하는 장면은 상상할 수 있는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명동 한 가운데에서 비장애인 커플이 키스를 하고 있다면 그 장면은 염장 혹은 부러움의 대상의 될테지만, 장애인 커플이 만드는 그러한 장면은 미담사례로 회자될 것이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인터넷 신문에는 “장애인 커플, 그들에게도 사랑은 있다”와 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올 것이며, “아름다운 광경이네요.” 솔로들의 마음마저도 훈훈하게 만드는 리플들이 기사 아래에 줄줄히 달릴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추녀와 사랑을 하는 평범한 스무살 남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의 친구는 사랑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위하는 것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랑은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 상상력은 작은 방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는 그 연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사랑을 ‘비장애인’ 그리고 ‘이성애자’의 것으로 규정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다. 대신 베들레헴에는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은 한 아이를 주었고, 우리에게는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함께 주었다. 그래서 그날을 기념해, 올해는 다양함을 상상하며 나와 ‘다름’에 부여하던 시선을 거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음지의 커플들에게도, 아기 예수의 사랑이,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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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화학부 04학번,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진학 예정. 커피와 고양이, 책을 좋아하고 식상함과 무기력을 싫어하는 스물다섯의 귀차니스트. 다년간의 관악산 휠체어 라이딩으로 다져진 팔근육과 연약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지체장애인. '대중의 과학화'를 꿈꾸며 멋진 저술가가 되고 싶은 평범한 과학도. 내게는 일상인 풍경들 속에 나 역시 풍경으로 비춰질까, 부조화한 이방인으로 비춰질가 오늘도 고민-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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