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장애인들과 장애인부모들이 참가한 가운데 울산시청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 모습. ⓒ박경태

10월초 장애인 부모활동가로서 울산시청 앞에서 열린 집회와 농성에 참여하게 되었다. 장애인단체와 부모단체 등이 참여하고 있는 울산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울산시청이 지난해 약속한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등 장애인 지원정책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여왔다. 그런데 시청은 정책 요구와 협의 과정에서 경찰력을 동원하여 농성자들을 연행하였고, 사법당국은 울산장애인부모회 대표가 집시법을 위반했다며 전격적으로 구속하였다.

울산시의 이러한 처사에 따라 내년도 장애인 복지정책에 대한 모든 협의가 결렬되었고, 지방정부와 당사자 단체들 간에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을 불러왔고, 전국의 장애인 운동진영을 들끓게 만들었다. 전국의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 부모에 대한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전국의 많은 장애인 운동 단체들이 울산시에 항의하는 농성에 합류하였다.

장애인 부모운동에 참여하면서 수시로 경찰서와 유치장을 드나들었던 필자도 그곳 농성에 참여하면서 분노와 안타까운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고, 같은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집회 현장에서 발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한 복지정책을 요구하며 농성을 했다고 장애인 부모를 구속한 것은 모든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억압입니다. 정윤호 대표의 구속은 지방정부 당국이 장애인 가족과 발달장애인을 불법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며, 모든 발달장애인 가족에 대한 구속이기도 합니다. 장애인 복지예산을 외면하고 장애인 당사자들을 억압하는 지방정부와 사법당국 등 권력집단에 대항해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울산에서 돌아와서 농성을 하던 와중에 폭행을 당하고 장애인 활동가들이 부상을 당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결국 울산시는 경찰력과 공무원을 동원해 농성장을 강제 철거하면서 항의하는 장애인 부모들과 활동가들을 연행하였고, 사법당국은 또 다시 활동가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장애인부모연대는 울산시청 사태를 ‘장애아동 부모에 대한 전국 최초의 구속사건으로서 울산 시청과 공안당국이 일으킨 공안탄압’ 으로 규정하고 장애인 부모와 당사자들의 분노와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고 항의하였다. 울산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 부모의 구속에 이은 활동가들에 대한 구속에 항의하여 단식농성을 전개하며 항의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활동보조 확대와 같은 장애인의 생존권적 요구는 짓밟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요구가 아니다. 이 땅에 장애인이 존재하는 한,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존재하는 한,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와 같은 요구는 계속될 것이며 날로 확대될 것이다”

필자는 울산시청 사태를 접하며 장애인에 대한 억압과 배제, 그리고 장애인 살해에 이르는 인류역사의 오랜 데자뷰를 떠올린다. 2천년전 고대에 장애인들은 대체로 유기와 살해, 추방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도시 노예국가 스파르타는 군사훈련과 적자생존의 원리를 담은 리쿠르소스법(Lycurgus)에 의해 국가가 장애영아를 선별하여 산 속에 버리거나 바닷가 벼랑 아래로 떨어뜨리는 식으로 모든 장애인을 살해하였다. 이러한 장애인 살해 악습은 로마시대에도 이어졌으며, 장애인을 대대적으로 희생시킨 중세 마녀 사냥을 거쳐 세계대전 전후 파시즘에 의해 재연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사법당국은 중증의 장애인 부모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여 자녀를 살해한 부모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등 장애인 살해를 방기해왔다. 장애인 가족의 과중한 의료비 부담과 가정해체를 막을 책무를 국가가 방기함으로써 장애인 살해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울산시청과 사법당국은 결국 장애인과 그 가족이 생존할 수 있는 정책 보다는 장애인 부모와 활동가들을 구속하고 그 운동을 탄압하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억압, 차별을 당연시해 온 대한민국 권력기관들은 주류 기득권층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장애인 운동진영의 예산반영 요구를 거부할 수 밖에 없다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울산지역에서 장애인 부모와 할동가들을 구속한 사법당국의 입장이 무엇인지 정말 의문이다. “장애인 자녀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려 하는 부모들과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연대활동 세력들에 대해 본때를 보여야 한다” 는 게 검찰과 재판부가 가진 속내 라고 들었다. 정말로 그렇다면 울산시와 사법당국은 장애인 운동과 부모운동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는게 아니라, 군대에서도 통하지 않는 ‘스파르타의 악습’을 재연하고 있는 게 아닌가.

2천년 이어온 장애인 살해와 억압을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법당국은 발달장애인 부모와 활동가들을 구속한 사건이 잘못된 것임을 선언하고 모든 구속자를 즉시 석방해야 한다. 그리고 울산시는 장애인 복지에 대한 정책과 실행계획을 솔직하게 다시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장애인을 격리하여 살해하던 고대 도시국가 스파르타와 대한민국 정부는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발달장애 중학생 딸을 둔 아버지 활동가입니다. 아이들 돌보고 살림도 챙기는 주부이기도 합니다. 2003년 부모활동가로서 장애인교육권연대,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를 조직하였고, 장애인활동가들과 함께 진보정당 장애인위원회를 건설하는데 참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애어린이 희망찾기>, 위드뉴스 <새로운 부모운동을 위한 전국순회> 라는 연재 글을 썼고, 2007년 한신대에서 <한국사회 장애인 부모운동 연구> 이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현재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정책국장과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조례운동본부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부모운동과 가족지원,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해방에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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