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그러니 놓여 있는 대학 입학 원서. ⓒ문영민

사랑하는 동생 C에게.

네가 면접을 봤던 대학교 수시 전형에서 불합격했다는 소식을 오늘 전해 들었어. 청각장애를 가진 네가, 지방 소도시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의 경영학과를 지원했다는 소식에, 네가 벌써 그렇게 컸구나라고 생각한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면접을 보기 위해서 서울에 올라와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대학교 공부는 얼마나 어려운지 대학교에 가면 꼭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지 기숙사 생활은 힘들지 않은지 조용한 말투로 물어보며, 대답하던 내 입술을 읽던 네 모습이 떠올라서 하루 종일 마음이 아팠다.

한 교실에 앉아 그저 수업을 듣기만 하면 되는 중고등학교와 달리,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해낼 수 없는 대학교, 그 새로운 세계와 맞닥뜨리기 직전의 너, 미지의 두려움 앞에 장애를 가지고 제대로 적응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던 네 모습에서 나는 6년 전 내가 대학을 입학할 때의 모습을 떠올렸어. 그래서 네가 합격하면, 6년 후에 내 모습보다 훨씬 더 멋있고 당당한 청년이 될 수 있도록 너의 대학생활을 도와주고 싶었어. 내 주위에 있는 멋진 청각장애인 친구들도 소개시켜주고, 장애 때문에 학교에서 부딪히는 문제들 때문에 혼자 고민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가끔은 친구들과 치킨에 맥주를 마시라고 용돈도 쥐어주고 말이야. 나는 면접을 잘 보았다는 네 말을 듣고 네가 당연히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합격하고 나면 네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단다.

그런데 불합격을 했다더구나. 학교에 물어보았더니 네가 면접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 잘못 대답했고, 때문에 학교에 입학해서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학습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는 것이 너의 불합격의 이유였다면서. 나는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었어. 왜냐하면 장애학생 복지 서비스 부문 ‘최우수 대학교’로 선정된 나의 학교에서도 불과 몇 년전에 비슷한 면접 차별이 있었거든. 휠체어를 타는 장애학생에게 “우리 학교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혼자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거나 시각장애학생에게 “시각장애인은 우리 학교에 처음 들어오는데, 학교에 들어와서 특별히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마라. 우리가 다 들어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거나 한 사례들이 있었어. 학생의 능력과 자질을 평가하는 선발 과정에서 이러한 질문이 개입될 이유가 전혀 없는데 말이야. 게다가 네 면접에서는 청각장애학생의 면접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인 문자통역이나 수화통역도 없었다고 들었어. 학교를 다닐 것인지 다니지 않을 것인지, 다닐 수 있을지 다니지 못할지에 대한 판단은 현실적인 상황과 지원 가능한 제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충분히 이해한 네가 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교육기관의 주관적 판단으로 합격/불합격을 결정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너의 청각장애를 학습능력이 없는 것으로 지레 판단해 너에게 불합격 통보를 내린 학교 관계자에게도 화가 나지만, 내 자신에게도 조금은 화가 났단다. 면접 차별이라는 문제가 우리 학교에서 일어났을 때 나의 선배와 친구들은 면접과정에서 학생의 능력과 자질을 평가할 수 있는 목적에만 충실하도록 장애에 대한 질문이나 언급을 하지 않도록 하는 지침, 규정을 마련해 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했었어. 면접 차별 말고도 장애 때문에 넓은 캠퍼스에서 불가피하게 마주하게 되는 ‘불합리’들에 대해서도 시정과 개선을 요구했지. 그리고 지금도 나의 많은 친구들, 후배들이 학교 안팎에서 그러한 불합리들에 도전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말이야, 단 한 번도 열정적으로 그 도전들에 몸을 담근 적도 없는 주제에, 공부를 해야한다고, 대학원에 진학해야 한다고, 먹고 사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슬그머니 그 현장들에서 비껴나있어. 여전히 주위에 불합리들에 대해 분노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바쁘니까 이제 먹고 살아야하니까 구경만 할게, 라고 비겁하게 자위하고 있단 말이지.

그런데 나의 가족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네게 그런 일이 있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비겁하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단 생각이 들어. 내가 너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또 한 가지, 어쩌면 의례상의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기회가 많이 남아있다는 걸 잊지 말아주렴. 네 목표만 분명하다면 네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여전히 많을꺼야. 장애로 인해 우리의 선택지에 제약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말이야.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네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들을 잘 이겨내왔는지 봐왔고 네게 작은 좌절 따위는 훌훌 털어낼 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끝까지 파이팅을 외쳐줄게. 더 좋은 기회와 조우해 조만간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네가 합격해 대학생이 되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는 약속, 절대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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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화학부 04학번,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진학 예정. 커피와 고양이, 책을 좋아하고 식상함과 무기력을 싫어하는 스물다섯의 귀차니스트. 다년간의 관악산 휠체어 라이딩으로 다져진 팔근육과 연약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지체장애인. '대중의 과학화'를 꿈꾸며 멋진 저술가가 되고 싶은 평범한 과학도. 내게는 일상인 풍경들 속에 나 역시 풍경으로 비춰질까, 부조화한 이방인으로 비춰질가 오늘도 고민-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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