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WISE단 활동을 해보니 장애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여러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어 섬찟하였다. ⓒ박현희

지하철에서

얼마 전 내가 사는 인근 지역의 서울시내 지하철과 저상버스를 타볼 기회가 있었다. 장애여성WISE단(장애여성안전감시단)의 단원 자격으로 장애여성의 입장에서 교통 및 관련시설의 안전성을 유심히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며칠 동안 지하철을 조사하면서, 지하철 내부의 장애인화장실, 엘리베이터 및 리프트의 안전도,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 전동차 내부의 휠체어석 위치와 지원요청 시스템 등을 꼼꼼히 체크하면서 사진으로 옮기는 순간 우리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여러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섬찟하였다.

먼저 지하철 승강장에 도착해서 내리려고 하던 순간부터 아찔한 순간을 경험하였다.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 간격이 너무 벌어져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면야 문제될 게 없겠지만 무거운 전동휠체어로 점프를 할 수도 없는 마당이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빠른 속도로 내려왔는데 결국 앞바퀴가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순간 겁이 덜컥 났지만, 다행히 건장한 남자 몇이서 내 전동휠체어를 꺼내 주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매일같이 지하철로 이동하는 장애여성의 안전을 위협하기에 충분해보였다.

다음으로, 지하철 내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가 보았다. 전동휠체어 덕분에 속도를 낼 수 있어 쉽사리 장애인화장실을 찾을 수 있었지만, 웬만한 장애인들은 화장실 찾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남?녀 구분도 되어 있지 않은 장애인 공동화장실이었다. 한 개의 화장실 내부에 남성용 변기, 세면대, 거울, 비상벨, 아기귀저기 받침대 등이 있었는데, 남녀 구별도 되어 있지 않은 그곳에서 하나의 변기로 대충 급한 볼일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황당했다. 마법에 걸린 장애여성이 이용을 하기 위해 찾은 화장실이 이런 곳이라면 무척 당혹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화장실에 남녀구분이 없다는 것은 장애여성을 여성으로 보지 않고 ‘무성’으로 취급하는 것으로서, 분명한 인권침해이다. 비장애인에게 남녀구분 화장실이 당연하듯이 장애인에게도 남녀 구분 화장실을 보장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저상버스와 옛 추억

이번 WISE단 활동을 통해 무엇보다 내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한 것은 저상버스였다. 저상버스를 처음 타 보았는데, 전동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저상버스에 올라타 보니 무척이나 새롭고 신비스럽기까지 하였다. 내 나이 중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어릴 적 중?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는 장애가 심해 매일 택시를 타야 했는데, 엄마가 주신 택시비가 너무 아까워 아침엔 택시를 타고, 귀가길에는 일반대중버스를 타곤 하였다. 치열한 인파를 뚫고 버스 출입문까지 가서 그나마 보조기를 착용한 한쪽 다리를 지탱해가며 양쪽 목발로 두 팔에 온힘을 다하여 “미안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저 이 버스 꼭 타야 돼요. 저 꼭 태워 주세요.” 사정하면서 학교에서 집으로 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행여 갑자기 길에서 소낙비라도 만났을 때 버스는커녕 택시조차 타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비오는 날에 장애인이 뭐 하러 바깥에 나와 고생이야? 집에 가만히 있지. 이런 날에 학교는 무슨 학교야?”

장애인 당사자치고 이런 말 한 번 정도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휠체어를 탄 채로 올라탈 수 있는 버스가 생겼으니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저상버스의 첫 경험 역시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순탄치 않았던 첫 경험

우선 일반 대중버스 4대가 올 때 저상버스 1대가 올까 말까 하는 기다림의 미학이 당연히 필요했고, 저상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는 순간 운전기사가 행여 나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봐서 손을 마구 흔들어야 했다. 저상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에도 경사로 작동이 되질 않아 거의 한참 동안 애를 먹어야 했다. 기사가 기계작동 방법을 잘 모를 뿐더러 아예 작동이 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저상버스 승객들 중에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저상버스를 운전하면서도 정작 장애인을 태워보지 못했다는 기사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겨우 저상버스에 올라타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에어컨 바람도 시원했고 커다란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서울 시내는 유난히 아름다워보였다. 비로소 찬찬히 버스 안을 둘러보니 전동휠체어는 그나마 두 대까지 탑승할 수 있는 것 같았지만, 전동스쿠터를 탄 장애인의 경우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만약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 친구 세 명이 이동하려고 하는데, 겨우 기다렸던 저상버스를 한꺼번에 타지 못하고 아쉽게도 한 사람은 뒤에 남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며칠 후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해야 했었는데, 이른 시간부터 콜택시를 부르려고 핸드폰의 숫자를 수십번 누르고서야 겨우 안내원과 통화할 수 있었다. 이 정도야 우리 장애인이용자에게는 기본이다. 기다려서 제 시간에 탈 수 있다면야 아주 특별한 행운이지만, 공항까지 약속된 시간이 있는 터라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결국 콜택시는 포기하고, 마침 집 근처에 저상버스정류장이 있었기에 큰 용기를 내어 저상버스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출근시간이어서 저상버스를 탈 수 없었다. 시간은 시간대로 허비하고 실망감만 안은 채 온몸은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결국 일반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이동하였다.

장애여성들도 출퇴근 시간에 안전하게 대중교통수단을 탈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너무 큰 욕심일까.

*칼럼니스트 최순희씨는 아들 셋을 둔 씩씩한 엄마이며, <내일을 여는 멋진여성> 서울시 강서지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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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은 장애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장애여성 안에도 다양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같은 생각, 다른 목소리"에서는 장애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조금씩 다른 목소리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장애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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