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의 수술 뒤에 쪼그리고 앉을 수 없게 되자 싱크대에 서서 걸레 빠는 방식을 택했다. 화들짝 놀라는 친구에게 얼마나 편한 줄 아냐며 한번 해보라고 권해주었다. ⓒ정선아

4번의 수술 끝에 펴진 허리

"하루이틀 살다 말 거면 절대 안하겠는데 그래도 아직 몇십년은 더 살 거 아냐."

겉으로는 그리 크게 표시나지 않는, 그렇지만 언제부턴가 꽤 많이 휘어버린 허리수술을 결정하고 수술 들어가기 전 내가 애써 나 자신을 위로하며 했던 말이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수술을 결정하고는 장장 10시간이 넘는 긴 수술을 4번이나 한 이후 난 똑바르게 펴진, 아주 예쁘게 펴진 허리를 갖게 되었다.

여기까지만이라면 정말 해피엔딩일 텐데, 겉으로 보기에 예뻐진 허리가 또다시 내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핀으로 모두 고정시켜 놓아버린 허리 때문에 쪼그려 앉지를 못해 혼자 양말을 신는 것도 어려워진 것이다. 양쪽 다리가 멀쩡하다면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서 신발도 신고 쪼그리고 앉아서 걸레질이라도 하겠지만 나로서는 그것이 불가능한지라 똑바로 펴진 허리와 밤마다 시달리던 통증이 사라진 대가로 정말 만만치 않은 새로운 불편이 생기고 말았다.

싱크대에서 걸레빨기

덕분에 요즘 난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구부러지지 않는 허리 탓에 쪼그리고 앉아서 걸레를 빠는 일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서서 편하게 할 수 있는 싱크대에서 걸레를 빠는 것이다. 사실 싱크대에서 양치질도 했었는데 아들녀석이 날 따라서 싱크대에서 양치질을 하는 바람에 바로 포기해버렸다. 내가 할 땐 몰랐는데 아들녀석이 싱크대에서 양치질 하는 건 왜 그리 싫던지...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깔끔도 병인양 할 정도로 내겐 결벽에 가까운 깔끔증세가 있다. 이런 내가 싱크대에서 걸레를 빨게 되다니... 암튼 걸레를 빨고 바로 락스로 싱크대를 닦아내곤 하는데 하루에 몇번 걸레를 빨아댄 날에는 손에서 온통 락스냄새가 진동을 한다.

얼마 전 집에 놀러온 친구가 싱크대에서 걸레를 빠는 나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더니만 빤한 잔소리를 하길래, "시끄러 이것아, 이게 얼마나 편한 줄 알아? 너도 한번 해봐"하며 오히려 큰소리를 쳐주었다. 그런 내게 입을 삐죽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던 친구에게서 며칠 뒤 전화가 왔다. 화분을 옮기다가 허리를 삐끗했다는 것이었다. 쪼그리고 앉는 게 힘들길래 마침 내가 싱크대에서 걸레를 빨던 모습이 생각나 자기도 그렇게 했더니 꽤 편하더라며 그녀가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래, 내가 편하면 너도 편한 거야. ㅎㅎ"

유모차도 이리 힘든데

얼마 전 한 아기엄마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전입신고를 하러 주민센터에 갔다왔는데 왜 이리 도로에 턱이 많고 울퉁불퉁한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유모차도 이리 힘든데 장애인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엔 거리에서 장애인 보기가 어려운 거구나! 정말 도로정비가 잘 되어 장애인도 편하게 바깥외출도 하고 시원한 공기도 맘껏 쐬는 그런 세상이 되었음 좋겠다."

장애인이 살기 편한 곳이면 누구에게나 살기 편한 곳이다. 위의 글을 올린 아기엄마처럼, 또 내 친구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인식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경사로, 화장실의 손잡이, 여객시설에서의 높이차 제거, 저상버스 등 장애인을 위한 모든 시설들이 결국은 모두에게 편리한 시설들임을 말이다.

*칼럼니스트 정경숙씨는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쉬게 되면서 새삼스레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지체장애여성이다. 중학생인 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글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장애여성은 장애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장애여성 안에도 다양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같은 생각, 다른 목소리"에서는 장애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조금씩 다른 목소리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장애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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