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여뀌, <너꽃해> 시인 김종태 작품. ⓒ김종태

정확히 30년 전이다. 한 대학 강의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과목의 첫 강의 시간이었다. 교수님이 들어오셨는데 키가 교수님의 허리 정도 밖에 안 되는 여자가 교수님 뒤를 따라 왔다.

교수님은 그 여자를 교단에 불러 세워 놓고 소개를 했다.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분야의 실력자이기 때문에 이 과목을 맡기게 됐다고 하며 교수님은 자리를 떠나셨다.

그러니까 그 여자 분은 강사였다. 등이 앞뒤로 튀어나온 것으로 보아 척추장애였다. 그 강사는 칠판에 자기 이름을 썼는데 팔을 다 뻗었지만 이름이 칠판 아래에 간신히 걸려 있었다.

그 순간 교실 안이 술렁거렸다. 뒤에 있던 남학생이 혼잣말처럼 내뱉은 욕이 조용한 교실 안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 그 남학생은 가방을 어깨에 둘러 메고 나가버렸다. 그러자 학생들이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빠져나갔다. 30여 명쯤 되던 학생들이 달랑 5명 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는 강의를 계속 했지만 목소리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휠체어에 앉아 있던 나는 그녀만큼은 아니겠지만 가슴이 뛰었다. 분노 때문이었다. 결국 그 과목은 폐지되고 말았다. 그때 난 알았다. 휠체어로는 교수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30년 전만해도 장애인들이 교단에 서기 어려웠다. 하지만 요즘은 장애인 교수들이 많다. 중도에 장애를 갖게 된 서울대학교 이상묵 박사도 전신마비 속에서 강단으로 돌아왔다.

나한테도 강의 요청이 왔다. 장애인복지론과 재활론을 강의한다. 난 강의 준비를 열심히 한다.

파워포인트가 있어 판서를 못하는 부분이 보완 된다. 내 장애 때문에 강의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시작한 일인데 막상 강의를 시작하자 30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이삭여뀌, <너꽃해> 시인 김종태 작품. ⓒ김종태

수강신청을 해서 첫시간 강의를 들은 학생 몇몇이 두 번째 시간부터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수강신청 변경 기간이라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것이 나에겐 상처가 됐다.

수업시간에 친구와 속닥거리는 학생이 있으면 다른 교수였어도 그랬을까 싶어 자존심이 상한다.

그런데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 것은 강의평가서였다. 학생들이 과목마다 교수에 대한 강의 평가를 하도록 돼 있는데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가다가 이런 짤막한 문장이 눈에 꽉 들어왔다.

-왠지 거부감이 생깁니다-

머리카락이 쭈삣 섰다. 강의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싫다는 것이 아닌가. 장애인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장애인 복지를 공부하는 젊은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국면이다.

한번은 날 취재하러 온 대학신문사 학생 기자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우리 친구 학교에도 목발을 사용하는 교수님 한 분이 계시는데요. 그 교수님 수업 시간에는 웃지도 못한데요."

"왜?"

"웃으면요. 일으켜 세워서 ‘넌 내가 우스워 보이니’ 하면서 애들 앞에서 창피를 준데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 수업 안 들으려고 한데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제발 부탁해요. 우리 잘 해봐요-

28년 동안 방송계에 몸담고 있는 방송작가이자 방송을 직접 진행하는 방송인입니다. 장애인 문학 발전을 위해 1991년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 문예지「솟대문학」을 창간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습니다. 틈틈이 단행본을 19권 출간하고 있는데 주로 장애인을 소재로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우송대학과 의료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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