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추, <너꽃해> 시인 김종태 작품. ⓒ김종태

한우 소 등급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나는 생뚱맞게 장애등급이 떠올랐다. 장애등급도 1급부터 6급까지 매겨지기 때문이다. 1급이 장애가 가장 심한 것이고 6급이 장애가 가장 경하다. 1급을 받으면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장애인들 사이에서는 장애등급이 예민한 문제이다.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으려고 주민센터에 신청을 하면 보건소에서 실사를 나온다. 그때 가급적 장애가 심해보이도록 노력한다. 보통 때 같으면 커피잔을 자연스럽게 들어 마시려고 테이블에 가슴을 갖다 대고 오른팔을 테이블 위에 올려 커피잔을 들어 입에 갖다 댔던 내가 아예 커피잔을 들 수 없는 것처럼 커피잔만 노려본다.

무의식중에 커피잔에 손이 갈까봐 '안돼. 지금 마시면 안돼'라고 되뇌였다.

하지만 일거리를 맡으러 갈 때는 180도 달라진다. 손을 못 쓴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가느다란 팔을 감추려고 여름에도 긴팔 옷을 찾아 입는다. 커피를 권하면 '방금 마시고 왔어요'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커피잔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아무래도 어색하기 때문에 그 어색함이 내 장애를 중증으로 판정할 것이 염려스러워서이다.

장애가 심하게 보여서 유리할 때와 장애가 심하면 불리할 때를 그러한 상황 판단에 따라 행동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했다.

비비추, <너꽃해> 시인 김종태 작품. ⓒ김종태

그런데 최근 정말 놀라운 정보를 입수했다. 보장구도 착용하지 않고 목발만 짚고 너무나 사뿐히 걸어다니는 그녀가 장애등급을 1급으로 조정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입방아에 올랐다.

“아니, 어떻게 걔가 1급이 될 수 있니? 그럼 전신마비는 뭐야? 팔 다리 다 못 쓰는 사람도 1급, 씩씩하게 걸어다니는 사람도 1급,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니? 1급 판정을 내린 의사가 장애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아는 의사를 찾아가서 샤바 샤바한 거죠.”

“걔는 부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부자가 문제가 아니라 높은데 계신 분이 그러면 안돼죠.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이 장애등급을 사기쳐서야 되겠어요?”

“어디 장애등급 뿐인 줄 아니? 그 밖에도 비리가 많데. TV시사프로그램에도 나왔다는데.”

“그래? TV에까지? 웬 망신이야.”

비비추, <너꽃해> 시인 김종태 작품. ⓒ김종태

장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장애만 있으면 다 장애인인줄 안다.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장애등급에 따른 차등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장애가 중할수록 사회적 제약도 많이 받고 그만큼 사회진출의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증장애인 위주의 장애인정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그런데 이렇게 자발적으로 걸을 수 있는 장애인이, 그것도 돈 많고 권력까지 있는 장애인이 장애등급을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올려서 혜택을 받는 것을 보면 인간이 참 치사하단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장애인정책은 장애인을 비굴하게 만들고 있다. 장애가 심해야 준다고 하니까 장애가 더 심각해 보이도록 하려 애쓰고, 가난해야 서비스를 받으니까 최대한 가난해 보이려고 한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장애인이 칙칙한 존재가 됐다.

그런데 장애인 분위기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바로 걸어다니는 1급 장애인이다. 그들은 장애인복지서비스를 받기 위해 장애를 더 심하게 포장했으니 말이다. 하긴 이득이 된다고 하면 장애가 없어도 장애를 선택하는 세상이고 보면 있는 장애를 좀 부풀린 것이 무슨 문제가 되랴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소비자고발을 한다.

"걸어다니는 1급 장애인이 있다던데 어찌된 일입니까?"

28년 동안 방송계에 몸담고 있는 방송작가이자 방송을 직접 진행하는 방송인입니다. 장애인 문학 발전을 위해 1991년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 문예지「솟대문학」을 창간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습니다. 틈틈이 단행본을 19권 출간하고 있는데 주로 장애인을 소재로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우송대학과 의료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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