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연꽃, <너꽃해> 시인 김종태 작품. ⓒ김종태

어디부터 얘기해야 하나? 그래, 그 인간을 만난 얘기부터 해야겠다. 나는 양족 다리에 보조기를 하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장애가 있다.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지체장애2급이지 1급장애나 다름이 없다. 2년제이지만 대학교육도 받았고 취직까지 했다. 비장애인들 사이에서는 평범한 인생과정이지만 장애인들 사이에서는 꽤 성공한 편이었다.

내 직장이 자동차 세일이라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 '웬수'가 끼어 있었다. 그가 나에게 접근했다. 그는 나보다 5살이나 연하였고 직업은 중장비기사였다. 외모도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었다.

나는 직업상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접근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한 대라도 더 팔아보려고 “자동차 사실 때 꼭 저한테 연락하세요”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고객으로 만들려고 작업을 했다.

“그럼요, 제 주위에 있는 분들한테도 다 말해두었는 걸요.”

-세상에 이렇게 예쁜짓까지...-

아무튼 자동차 한 대 팔아보려다가 자동차 한 대 못 팔고 그에게 몸을 허락하고 말았다. 결혼도 생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임신이 됐다. 내가 임신을 했다고 하자 그는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 장애여성은 임신이 잘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린 결혼이란 절차를 생략하고 동거를 시작했다. 내 인생이 이렇게 허잡해질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임신으로 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됐다. 그는 중장비 기술자이긴 했지만 월급이 아니라 일당제였다.

내가 어쩌다 불평을 하면 지게차 한 대만 사면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게차는 일반 승용차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액수였다. 자기 기분에 맞지 않으면 일을 나가지 않는 남편이 한심해서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내눈에 번개가 쳤다. 남편이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린 것이다. 나는 뒤로 벌렁 자빠졌다. 허리에 힘이 없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이 툭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지는데 분노로 달구어진 주먹이 날아왔으니 그 충격을 당해낼 수 없었다.

너무 순간적인 사건이라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내 몸은 만삭이었다. 우리 아들은 뱃속에서부터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한 것이다.

남편의 폭력은 이렇게 시작됐다.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니까 나와 아들은 12년 동안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남편의 폭력은 잔인했다. 보조기를 풀고 있으면 도망을 가고 싶어도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남편은 나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 폭력을 행사했다. 아이를 때리지 못하게 하면 아이를 데리고 공터에 데리고 나가서 때릴 정도로 병적이다.

아이를 아빠 곁에 두었다가는 아이가 잘못될 것 같아서 폭력아동보호소에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사가 나와 사정 얘기를 듣더니 바로 아빠와 격리시켜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아들을 데리고 갔다.

이제 내가 문제다. 어떻게 해야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남편이 찾아올 수 없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다. 내 인생에서 남편이란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다.

장애는 내의지로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었지만 남편이란 이름으로 나를 괴롭히는 결혼 생활의 문제는 나 혼자 해결할 수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다.

-나를 부탁해요-

28년 동안 방송계에 몸담고 있는 방송작가이자 방송을 직접 진행하는 방송인입니다. 장애인 문학 발전을 위해 1991년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 문예지「솟대문학」을 창간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습니다. 틈틈이 단행본을 19권 출간하고 있는데 주로 장애인을 소재로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우송대학과 의료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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