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극을 사랑한다. 그 순간만은 이질성이 아닌 다른 이유로, 사람들 앞에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영

올해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투쟁이 진행되었고, 세상은 그만큼 많은 것이 변화했다. 그러나 여전히도 많은 장애인들은 일상세계 속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많은 변화를 이루어내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라는 ‘무대’는 멀게만 느껴진다.

나는 학교의 매점이나 구내서점 등에서 물건 값을 계산하기 위해 줄을 설 때가 있다. 그럼 종종 어떤 사람이 내 앞을 너무나 자연스레 새치기 하는 경우를 보곤 하는데, 그 앞사람까지 추월 하지는 않는 걸로 보아 그에게 아주 바쁜 어떤 일이 있거나 악의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가끔은 점원이 내가 먼저 줄을 서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나에게 먼저 오라고 말을 걸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나를 새치기한 그 사람은 나를 보고는 흠칫 놀란다. 그것은 마치 “아니 당신이 언제 그곳에 있었지요?”라는 반응 같다.

그렇다. 그 사람들은 보통 악의가 없다. 그저 나를 못 보았을 뿐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아래쪽을 잘 보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들의 시선보다 1미터 정도 아래에 있는 나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무엇인가 어떤 존재가 느껴졌다고 해도, 그게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어떤 경제주체일 것이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하는 것도 같다. 사람들은 앞만 보고 걸어간다. 그리고 그 앞에서도 일상적으로 자신과 관련될 어떤 익숙한 존재들만을 포착한다. 아래쪽에 있는 꿈틀거리는 존재들은 바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다지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이 쏟아지는 세계에서 어쩌면 인간이 가진 이러한 인지적 협소함은 효율성을 위해 불가피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같은 눈높이에서 강력하게 일상과 관련을 맺는 존재가 아닌 나 같은 인간들은, 발버둥을 쳐야 남의 눈에 간신히 ‘보이게’될 것이다. 물론 그 보인다는 것은 단지 시각적으로 눈에 띤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길을 지나가는 휠체어를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위해서 나는 전혀 발버둥 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좀 덜 쳐다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보인다는 것은 바로 어떤 욕망을 가지고 특정 목적을 가진 일을, 그 주체가 되어 행하는 존재로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휠체어를 타고 본격적으로 처음 세상으로 나간 이후부터 나는 절대로 내가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외출할 때마다 느끼게 되었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몇 해 전에는 한 시각장애인 대학 선배와 중학교 때부터 재활원에서 알게 된 다른 친구 둘과 우연히 함께 만나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다. 시간도 늦어 출출하고 술생각도 나던 참에 우리는 근처의 한 고기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두 대의 휠체어와 한 명의 시각장애인, 그리고 또 한 명의 뇌병변 장애인으로 넷 모두 장애가 있었다. 즐겁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 고기집의 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달려 나온 주인은 대뜸 “여기는 왜 오신거에요?”라고 물었다.

왜 왔냐니? 고기집에 온 이유는 당연히 고기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주인에게는 장애인 네 사람이 돈을 내고 무엇인가를 먹기 위해 그 늦은 시간에 자신을 방문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 우리는 불청객이었다. 돈을 구걸하거나, 또는 어떤 도움을 바라는 존재일 수는 있어도, 후줄근한 차림의 장애인 네 명이서 그 늦은 시간에 무려 ‘고기’를 먹으러 올 일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당혹스럽고 화도 나 주인에게 설명을 했고, 그는 뒤늦게 사과를 하며 들어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도저히 그곳에서 식사를 할 기분일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다른 집으로 이동을 했다. 그러나 그날따라 공교롭게도 다른 집 주인조차 우리에게 “무슨 일이 세요?”라며 첫 인사를 했다.

당시 그러한 말을 들었던 사람들은 바로 몇 년 후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유명세를 타게 되는 최영이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였으며, 장애인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한 장애인활동가와, 인터넷에서 쇼핑몰을 구상했던 재능 있는 한 장애인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 넷의 삶은 식사조차 주체적으로 하지 못할 존재로 순식간에 세상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복잡하고 열정적인 삶. 치열하고 주체적인 삶의 순간들은, 이처럼 아주 짧은 순간 그 존재의 근원부터 삭제 당한 것이다.

세계는 많이 변화했고, 장애인들은 분명 이전에 비해 아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 무대의 중심을 꿈꾼다.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의무들은 아마도 거창한 정치적 목표, 이데올로기적 승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세상에 ‘보이고 싶다’는 소박한 욕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관객에서 무대의 배경으로, 이제는 주연이 되는 것이다.

20대 후반의 지체장애인. 태어나서부터 10여 년간 병원생활을 했다. 초등학교 검정고시, 특수학교 중학부, 일반고교를 거쳐 2003년 대학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했고, 2009년부터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우주와 관련한 서적이나 다큐멘터리, 생물학 서적, 연극, 드라마, 소설 등을 좋아한다. 스스로 섹시한 장애인이라고 공언하고 다니지만 가난하고 까칠한 성격에 별 볼일 없는 외모로 연애시장에서 잘 안 팔린다. 신이나 사람, 어떤 신념에 의존하기보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고자 노력중이다. 직설적이고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화법을 종종 구사해 주변에서 원성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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