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수업

나의 사춘기는 암울했다. 목소리는 굵어지고 아랫도리가 거뭇거뭇해질 무렵, 나는 창밖으로 달빛만 들어오는 작은 방에서 몇 권의 책과 오래된 게임기만 가지고 밤을 새우곤 했다. 그때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사칙연산과 한글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친구들은 피아노를 배우고 웅변학원에 다녔으며, 중학교에 입학해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선천적 질병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잠시 걸을 수 있던 시기에도 초등학교 입학은 거절당했다.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즐겁기도 했다. 동네 친구들이 수업이 끝나면 놀러왔고, 만화책과 전자오락은 재미있었으며, 마당을 뛰어다니는 개들의 모습이 좋았다. 그러나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외모에 대한 관심이 극에 달하는 사춘기가 되자, 나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내 미래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내 모습, 그리고 저 멀리 학교를 오가는 여자아이들의 존재에 의해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외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16살이 되어 뒤늦게 특수학교에 입학하면서 내 삶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이성친구를 사귀었고, 공부는 생각보다 할 만 했다. 나는 학교 행사의 사회를 보고, 사물놀이패에 들어갔으며 휠체어 농구를 배웠다. 그리고 나는 더 큰 세계로 나가고 싶어 일반 고등학교에 어렵사리 진학했다. 그때도 아주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경제적인 지원을 받았고 내 장애를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왔으며, 운전면허를 땄고, 15살 때 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자유를 얻었다. 나는 이제 사칙연산과 한글을 읽는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얼마 전 대학을 졸업했다. 아직도 전체 장애인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가진 나라에서,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장애인으로서는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부모님도 매우 감격스러워했고, 나는 나 스스로를 칭찬해주었다.

새로운 수업시대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는, 아니 나에게는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적어도 사춘기 때 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이동을 할 수 있고 그때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었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나는 여전히 내 앞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엉덩이와 다리를 멍하게 바라본다. 그것들은 내게 그 자체로 멋지고 아름다워 보인다. 성큼성큼 걷는 인간의 걸음걸이는 당당함과 자유로움이다. 사람들은 내 머리위에서 대화를 나누고 나는 언제나 낮은 시점에 갇혀있다. 체력은 약하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과감히 고백하는 것은 꺼린다. 앞으로 내 삶에서 나는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아이는 제대로 나아 길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장애인에게는 두 가지 투쟁이 기다린다. 하나는 사회를 향해있다. 그것은 장애인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교육을 받고, 노동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현대인의 평범한 삶이 장애인에게는 모두 격렬한 투쟁을 통해 확보되어야할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각자의 내부에 있다. 내부에서 격렬하게 꿈틀거리는 욕망, 억압, 심장이 터질것 같은 신체적 자유에 대한 갈망은 단지 사회적인 산물만은 아니다. 엘리베이터와 점자도서를 통해 우리는 사회적 권리를 확보할 수 있고 광범위한 자유를 얻을 수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내면에 가라앉아 있는 사춘기적 갈망과 싸워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연대와 노력을 통해 나는 대학을 졸업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달빛이 들어오던 그 쓸쓸한 방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 내면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봄을 맞아 이제 나에게도, 그리고 장애인 모두에게도 새로운 삶, 새로운 투쟁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우리의 외부와 내부에서 들끓는 투쟁의 대상들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두를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당당함’일 것이다. 내 안의 사춘기를 부정하거나, 유치한 것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모습이며 자연스러운 인간적 갈망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을 부끄럽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이다. 앞으로 생의 2막을 시작하는 나는, 바로 이런 용기를 갖고 싶다. 그리고 이 용기와 함께 사회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자의식과 사회적 연대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나와 당신들의 수업시대는 계속된다. 새로운 봄은 시작된다.

20대 후반의 지체장애인. 태어나서부터 10여 년간 병원생활을 했다. 초등학교 검정고시, 특수학교 중학부, 일반고교를 거쳐 2003년 대학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했고, 2009년부터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우주와 관련한 서적이나 다큐멘터리, 생물학 서적, 연극, 드라마, 소설 등을 좋아한다. 스스로 섹시한 장애인이라고 공언하고 다니지만 가난하고 까칠한 성격에 별 볼일 없는 외모로 연애시장에서 잘 안 팔린다. 신이나 사람, 어떤 신념에 의존하기보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고자 노력중이다. 직설적이고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화법을 종종 구사해 주변에서 원성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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