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4일 다수의 장애인단체들이 이명박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의아한 일이 벌어졌다. 일단의 장애인들이 나와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기업인들과 연예인들의 지지선언도 잇따랐지만 아마도 이 지지선언이야말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와 한나라당을 지지한 모든 집단 가운데 가장 ‘이례적인’ 지지였을 것이다. 왜냐? 장애인과 이명박은 아무런 이해관계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던 영국의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B. Russel)은 사람들이 자기 이익만 합리적으로 챙겨도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즉, 남을 생각한다거나 공적인 일에 헌신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자신의 이익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판단하는 합리적인 ‘이기주의’만 제대로 발휘되어도 지금보다는 좋은 세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우리사회는 아직도 그렇지 못해 보인다. 특히나 가장 작은 이익도 절실한 인구집단인 ‘장애인당사자’ 중 일부가 그 당시 대표적으로 그러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평가야 정치적 견해에 따라 일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동의할 만한 분명한 사실은 이대통령의 정책 기조가 친시장,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우파정부라는 것이다.(물론 요즘 하는 것 보면 우파정부가 맞는지조차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우리의 위대한 몇몇 ‘장애인당사자’들은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 경제성장이 이루어져 장애인들의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며 지지를 선언했다. 장애인운동 한다는 분들이 설마 몰랐던 것일까?

경제성장과 장애인의 삶의 질은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즉 경제가 발전한 나라들이 대개 장애인의 삶의 질도 높은 것은 맞지만 경제가 성장한다고 반드시 장애인의 삶의 질이 향상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국가가 어떤 경제모델을 유지하는가 그리고 사회의 기본적인 문화적 패러다임은 어떠한 것인가에 따라 장애인의 삶의 질은 현저한 차이가 있다.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나 같은 비전문가조차 이명박 당시 후보가 주장하던 경제패러다임과 장애인복지는 전혀 상반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러셀은 이 책에서, 자신들의 이익만 '합리적으로' 챙겨도 세상은 지금보다 더 살기 좋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 2008.) ⓒ푸른숲

장애인의 복지는 경쟁위주, 개인주의, 자유주의적 정책기조에 의해 유지되기 어려운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재정을 축소하고 경쟁을 강화하는 기본 정책기조가 공적 서비스와 연대의식, 공동체문화를 기반으로 확립되어야 할 장애인정책과 모순된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장애인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장애인집단에게 가장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정책기조를 주장한 사람을 지지한 것이다. 이 아이러니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은 나의 모자란 머리로 생각할 때 딱 두 가지인데 첫째는, 이 분들이 너무나 이타적인 분들이라 비록 장애인에게 불이익이 돌아오겠지만 당장 우리 국민 전체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성장이니 우리가 희생하고서라도 지지하겠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 분들은 참으로 엄청난 이타주의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무식한 이타주의는 사회의 해악이다. 러셀은 그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두 번째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밀고 있는 그 특유의 정치적 수사를 진정으로 신뢰했을 가능성이다. 그것은 바로 항상 본인의 가난했던 시절을 언급하는 것이다. 시장에 찾아가 “나도 노점상을 했다”고 말하고, 고등학생들을 만나 뻥튀기를 사주며 “내가 이것을 팔았었다”라고 말하는 그것이다. 그리고 청와대로 돌아와 상속세를 폐지하고 복지재정을 동결한다. 이런 표리부동한 행태를 보면 (가난했던 어린 시절 경험과, 그의 개인적 성공은 물론 의미 있는 것이지만) 그가 이런 수사를 계속하는 것은 자신이 ‘소외계층’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해 정책이 아닌 이미지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일 뿐임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몇몇 장애인들은 이것을 믿었고 그래서 그가 진심으로 소외계층을 대변해 줄 것이라고 믿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가 소외계층 출신이라는 사실과 지금 그가 대변하는 이익과 정치기조는 완전히 상반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경제성장을 통해 소외계층을 돕겠다는 의미에서 세금을 줄이고 복지재정을 효율성 위주로 조절하는 것은 아니냐고? 그와 전혀 관계없는 상속세와 종부세를 집권하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감세한 것이 부자 아버지를 가진 장애인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정책이라고 한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이제 곧 취임1주년이다. 국가인권위의 인력은 축소되었고 장애차별시정위원회는 물 건너갔으며, LPG 지원제도 폐지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분명한 교훈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과거 정체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슈퍼맨’들의 수사를 있는 그대로 믿지 말라는 것이다.

소위 ‘잘 나가는’ 장애인들도 어디가든 언급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당신들 마음 잘 안다. 나도 장애인이다.(혹은 우리 아이도 장애인이다)” 서민, 농민, 노동자, 철거민 출신임을 내세우고, 장애인당사자임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유별나게 강조하면서 뒤에 가서는 정작 그와 완전히 상반되는 이익을 대변해온 사람들이 지금껏 해온 일을 생각해보면 왜 이들이 이 수사를 그토록 강조할 수밖에 없는지 알만한 일이다.

20대 후반의 지체장애인. 태어나서부터 10여 년간 병원생활을 했다. 초등학교 검정고시, 특수학교 중학부, 일반고교를 거쳐 2003년 대학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했고, 2009년부터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우주와 관련한 서적이나 다큐멘터리, 생물학 서적, 연극, 드라마, 소설 등을 좋아한다. 스스로 섹시한 장애인이라고 공언하고 다니지만 가난하고 까칠한 성격에 별 볼일 없는 외모로 연애시장에서 잘 안 팔린다. 신이나 사람, 어떤 신념에 의존하기보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고자 노력중이다. 직설적이고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화법을 종종 구사해 주변에서 원성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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