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넘어 '품위'를 주장하는 마갈릿(A. Margalit)의 책, 품위 있는 사회. ⓒ동녘

모욕하는 사회

장애는 과거부터 모욕의 주요 대상이었다. 서양 중세시대에는 귀족들이 장애인들을 파티에 불러 모으고 그들을 놀리는 것으로 파티의 흥을 돋았다고 한다. 지금도 어린아이들은 종종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한다. 특정한 장애가 매우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용되었던 사회도 있었지만, 사실상 많은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모욕적인 경험을 한다.

간단히 말해 모욕은 상대의 자존감을 짓밟아 자신의 우월감을 느끼려는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히브리대학의 철학교수 아비샤이 마갈릿(A. Margalit)은 그의 책 「품위 있는 사회」(동녘, 2008)에서 모욕의 특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모욕은 으레 모욕당한 자들의 인간성을 전제하고 있다…(중략)…상대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모욕 행위를 하려면, 그를 의식이 있는 존재, 따라서 내적으로 인간적 가치를 소유한 존재로 간주해야 한다.”(124-125)

다시 말해, 모욕이란 건 사실 상대의 인간성을 짓밟는데서 오는 쾌락이기 때문에 일단 상대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인간적 존재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고, 자신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태도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자명종을 집어던지거나 가문비나무의 가지를 꺾는 일은 이런 쾌감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우리는 중세와 같은 처절한 모욕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는가? 노골적인 형태의 일부 모욕행위들이 확실히 줄어들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완전히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장애인도 인간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인정하는 사회에서 모욕은 모욕을 주는 자에게 더 강한 쾌감을 준다. 그래서 모욕은 제도, 문화, 종교를 통해 교묘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장애를 가진 우리 모두가 일상을 통해 절절히 경험하고 있듯이,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휠체어 리프트의 음악소리, 남녀가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화장실, 휘황찬란한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시행되는 동사무소의 쌀 전달식. 그 모든 것들은 제도를 통해 누군가의 자존감에 상처를 낸다. 또한 종교인들은 장애인을 앞에 놓고 구원 이후에 완전한 육체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설교하고, 어떤 과학자는 방송에 나와 “내가 너를 걷게 하겠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것들은 모두 현재의 나를 미래의 구원에 맡길 때에만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침울한 열등감에 빠뜨린다.

이 모든 것들은 선량하고 숭고한 외피를 둘러싸고 있지만(그리고 실제로 그 의도 또한 선량하겠지만), 사실 “너의 안쓰러움을 내 능력으로 감싸 안고 싶다”라는 자기 우월성의 쾌락으로부터 자극된다. “요즘 너무 살기 힘들다”는 친구의 고백에 “꽃동네가서 장애인들을 보고 오면 삶에 힘이 날 것이다”라고 충고해 주는 사람들은 명백히 누군가를 모욕하는 것이지만, 사실 자신보다 열등한 신체를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인간들을 만나 자기존재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 큰 유혹이다. 이렇게 여전히 사회의 곳곳에는 모욕이 스며든다.

품위는 쿨이 아니라 '핫'

사실 많은 장애인들(나를 포함하여)이 이러한 모욕에 대처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그 어떤 외부적 모욕에도 나의 자존감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위안하는 것이다. 절단된 팔, 휜 허리, 보이지 않는 눈, 통제되지 않는 발음을 가진 많은 장애인들은 오늘도 세상의 모욕에 ‘쿨 한 태도’를 보이기 위해 애를 쓴다. 누군가의 호기심어린 시선은 ‘내가 잘 생겨서 쳐다본다고’ 해둔다. 한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처럼 “난 참 멋진 인간이다. 이 따위 시련, 까딱 안한다”라고 최면을 거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 오른쪽 뺨을 때리면 아무렇지 않게 왼쪽 뺨도 내놓으면서 그 따위 태도는 전혀 모욕적이지 않다는 능청스러움. 바로 그런 게 모욕을 대처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저명한 철학자 니체는 이러한 태도를 ‘노예의 도덕’이라고 불렀다. 주인이 아무리 괴롭히고 그의 행동을 통제해도, 노예는 자신의 정신만은 자유로우며, 주인은 결코 자신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결코 모욕당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거에도 노예였고, 죽을 때도 노예로 죽는다. 자존감에 상처는 입지 않았을지언정, 그의 자녀, 그의 동료, 그의 연인은 영원히 노예로 남아 있을 뿐이다.

마갈릿의 책 제목, 즉 ‘품위 있는 사회’란 제도가 개인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이다. 이것은 단지 개인이 강인한 심성으로 모욕감을 느끼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품위 있는 사회란 ‘정의로운 분배’나 ‘정의로운 관심’을 넘어, 그것들을 모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실현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렇기에 우리가 ‘품위 있는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 모욕과 맞서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노예의 도덕으로 색칠한 방어막과 결별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장애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경험은 때로는 모욕적이고, 죽을 만큼 고통스럽고, 부담스럽다. 그리고 그것은 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난 참 쿨 한 인간이며, 장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방어막으로 그 외부의 힘을 부정해왔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래서 이제 나는 쿨 함 보다는, ‘핫’한 장애인이 되기를 선호한다. 뜨겁게 분노하고, 아파하고, 절절히 체험해야 우리에게 자유로움이 찾아오지 않을까. 자고로 품위 있는 사회란, 일단 품위 있는 척하는 위선을 던져 버리고 모욕과 정면대응 할 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20대 후반의 지체장애인. 태어나서부터 10여 년간 병원생활을 했다. 초등학교 검정고시, 특수학교 중학부, 일반고교를 거쳐 2003년 대학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했고, 2009년부터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우주와 관련한 서적이나 다큐멘터리, 생물학 서적, 연극, 드라마, 소설 등을 좋아한다. 스스로 섹시한 장애인이라고 공언하고 다니지만 가난하고 까칠한 성격에 별 볼일 없는 외모로 연애시장에서 잘 안 팔린다. 신이나 사람, 어떤 신념에 의존하기보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고자 노력중이다. 직설적이고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화법을 종종 구사해 주변에서 원성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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