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누군가에게 축복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삶의 에너지가 되기도 합니다. 저에게도 때로 그러하지요. 또한 많은 장애인들은 이제 장애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사회의 배타적인 구조 때문에 ‘구성’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장애’란 것은 대체로 삶을 무겁게 만듭니다. 저는 스스로를 섹시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좀처럼 장애인은 섹시하기가 힘들지요. 우아하고 사뿐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야 할 판에 굵기만 한 팔뚝으로 힘겹게 휠체어를 미는 모습은 분명 그다지 ‘섹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일단 연애시장에서 잘 안 팔려요. 또 직립보행하도록 진화된 종족들의 세상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니, 그들에게 맞게 구조화된 모든 시설과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어 돈을 벌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공부를 10년이 넘게 하고 있습니다. 그나마도 대다수의 장애인에게는 공부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니 이 상황에 감사해야 할 판이지요.

소수의 슈퍼맨들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가난하고, 고립되어서, 외롭게 삶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유일한 구원은 바로 ‘꿈’입니다. 그 중 하나는 종교가 제공하지요.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니 천국이라도 좀 쉽게 갈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게 만드는 설교를 들으며 오늘도 하루를 버티게 하는 꿈. 또 다른 꿈은 이 사회가 제공합니다.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며 오늘도 언론들은 슈퍼맨들의 사례를 보도합니다. 일본의 절단장애인은 당당히 알몸을 들어낸 채 수영도 하고 야구도 한다지만, 현실의 저는 대중탕조차 이용하지 못한 채 그와 스스로를 비교하며 자책할 따름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이런 꿈들은 삶을 지탱하는 힘입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덕에 신께 구원받는데 유리할 수도 있고, 장애 덕분에 더 아름답고 로맨틱한 사랑을 할지도 모르며, 내가 도전하는 모든 것들이 ‘인간 승리’가 되어 포털사이트 일면에 뜰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을 비난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세상 모두가 우리를 소외시키며, 우리에게 가난하고 외로운 삶을 제공해도, 나의 ‘주님’만은 나를 지켜주시니 그것으로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가요? 사람들이 다들 떠나가도 그래도 나의 장애까지 사랑해줄 아름다운 연인과의 로맨틱한 사랑은 가능한가요? 내가 죽도록 열심히 노력해 장애를 ‘극복’하면, 세상사람들은 나를 통해 감동과 힘을 얻고, 나를 멋진 인간으로 대우해줄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지극히 우연적인 분자들의 결합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래서 우연히 태어난 생명체들이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장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은 때로 이렇게 비관적으로 보이기도 하지요. 오늘도 ‘신이 선택한 민족’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해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죽거나,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얼마 후면 저에게 깊이 공감하고 끈끈한 관계를 맺었던 그녀가 다른 훤칠한 비장애인남성과 결혼을 합니다. TV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장애인들에게 성금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많은 이 사회는, 조금만 그 형편이 어려워지면 장애인들에게 지나친 배려를 하는 것은 아니냐고 당장 불만을 제기합니다.

이렇게 세상은 어쩌면 신도 없고 쓸쓸하며,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생각보다 이기적이고 팍팍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라고 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나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칼럼을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아직 30년도 채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칼럼의 제목은 ‘수업시대’입니다. 저는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꿈’들에 태클을 걸어보기도 할 것이고, 그것이 없어진 세계에서 더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과 권리들을 더 큰 꿈들에 연결 지어 보기도 할 것입니다. 장애는 극복이 가능한 것인가? 또는 정말 사회적 구성물일 뿐이어서 극복조차 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장애인의 권리는 천부인권적인 것인가? 그 모든 것들에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 글쓰기를 자신을 성숙시킬 ‘수업’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여러분들의 지지와 비판이 반드시 필요하겠지요.

앞으로 일 년 동안 쉽지 않은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장애인권 담론과 관련된 여러 가지 고민들, 그리고 윤리적 난제들에 하나하나 질문을 제기할 것입니다. 수박겉핥기에 불과하겠지만, 성실함만은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물론 제 일상의 소소한 고민과 생각의 조각들도 간간이 등장할 것입니다.

부족한 사람에게 지면을 할애해준 에이블 뉴스에 감사드리며, 1년간 어설픈 젊은이의 ‘발칙한 생각’을 읽어주실 독자들께도 미리 감사를 드립니다.

20대 후반의 지체장애인. 태어나서부터 10여 년간 병원생활을 했다. 초등학교 검정고시, 특수학교 중학부, 일반고교를 거쳐 2003년 대학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했고, 2009년부터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우주와 관련한 서적이나 다큐멘터리, 생물학 서적, 연극, 드라마, 소설 등을 좋아한다. 스스로 섹시한 장애인이라고 공언하고 다니지만 가난하고 까칠한 성격에 별 볼일 없는 외모로 연애시장에서 잘 안 팔린다. 신이나 사람, 어떤 신념에 의존하기보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고자 노력중이다. 직설적이고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화법을 종종 구사해 주변에서 원성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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