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영화의 고전 <제8요일> ⓒ워킹타이틀 필름즈

제8요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신이 만물을 첫째날부터 여섯째날까지 만들고 일곱째 되는 날은 편안히 쉬셨다. 그러므로 제8요일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요일이다. 그런데 왜 <제 8요일> 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시설생활을 하는 조르쥬, 그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주말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보며 자신을 보러올 엄마를 기다린다. 하지만 엄마가 오지 않자 직접 엄마가 계신 집을 찾아 떠난다. 시설부터 자신을 따라온 개가 아리의 차에 치어 죽게 되면서 아리와의 인연은 시작된다. 인간의 순수성이 메말라가는 아리의 정서를 찾아주고 가족들 품으로 안겨준 후 자신을 그토록 그리던 엄마가 계신 곳으로 행복하게 떠난다.

조르쥬는 엄마가 계신 집을 찾아 떠난다. ⓒ워킹타이틀 필름즈

세일즈 강연자인 아리는 일이 우선인 현대 직장인의 전형이다. 밖에서는 성공한 강연자이지만 안에서는 가족으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부인과 아이들로부터 다시 신뢰를 얻고자 하지만 쉽지가 않자 강연하는 일에도 점점 흥미를 잃어간다. 아이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날 곰 인형 선물을 차에 싣고 달려가지만 멀리서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보고 힘없이 돌아선다. 돌아오는 길에 조르쥬의 개를 운전부주의로 죽인 후 조르쥬와의 동행은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조르쥬를 통해 잃고 있던 인간의 순수성을 찾게 되고 가족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세일즈 강연자인 아리는 일이 우선인 현대 직장인의 전형이다. ⓒ워킹타이틀 필름즈

개인적으로 프랑스 영화를 좋아한다. 거친 표현을 할 때는 불어가 주는 부드러운 어감 때문에 그 거침이 반감되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빠르지 않게 살며시(?) 넘어가는 장면들은 헐리우드의 스펙터클한 장면에 숨차하던 내 호흡에 알맞다. 또한 내용을 친절하게 관객에게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 감독들의 모호한 연출을 특히 좋아한다. 영화를 본 후 관객은 그 모호함을 나름대로 해석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관객의 즐거움은 클 수 있다고 본다.

프랑스 영화의 모호한 연출은 관객들에게 항상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워킹타이틀 필름즈

조르쥬가 앓고 있는 다운증후군은 사람의 23쌍 염색체중 21번째 염색체가 하나 더 있어서 생기는 병이다. 외모가 얼굴이 넓고 편평하며, 눈꼬리가 위로 치켜올라가 있고 귀가 밑에 붙어 있고, 코가 작고 입술과 혀가 크고, 턱이 기울어져 있으며, 가벼운 또는 심한 지적장애, 신장이나 심장의 기형, 그리고 손가락·손바닥·발바닥 지문이 이상하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어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런 조르쥬를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멈칫하며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아리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자신의 실수로 골치 덩어리를 떠안았다는 듯 조르쥬를 하루빨리 가족에게 데려다 주고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와 함께 며칠을 보내는 동안 어린아이 같은 순수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모습을 그 순수성에 비춰본다. 결국엔 “난 다른 사람과 달라”라며 울면서 말하는 조르쥬에게 “넌 다른 사람보다 나아” 하며 말하게 된다. 외모가 아닌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조르쥬가 “내 친구 아리”라 말할 때 “내 친구 조르쥬”로 받아들이게 되고 둘은 어느 새 친구가 된 것이다. 사회적 지위나 혹은 숫자에 불과한 나이, 장애와 비장애, 보호자와 피보호자라는 구별들을 헌 옷처럼 벗어던지고 친구로 자리잡게 된다.

아리 또한 조르쥬와의 첫만남에서 멈칫했다.ⓒ워킹타이틀 필름즈

세상에서 부모님의 사랑만큼 절대적인 사랑이 있겠는가. 특히 모성애는 더욱 그러하다. 그 중 장애를 가진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보살피게 된다. 그러는 동안 다른 자녀들은 상대적으로 부모의 사랑을 덜 받는다는 생각에 애정결핍증이 나타나거나 다른 한편으로 장애를 가진 형제를 자신이 책임져야한다는 부담감에 힘들어한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이 조르쥬가 누나 집에 찾아갔을 때 잘 나타난다. 조르쥬의 유일한 혈육인 누나가 자신의 인생을 더 이상 동생을 돌보면서 보내고 싶지 않다면 동생을 시설로 떠나보낸다.

우리나라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에서는 인구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형을 시설에 보내지만 결국 다시 형과 같이 살기로 결정하고 데리고 오는 장면과는 반대이다. 조르쥬와 인섭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이 행복할 것이다. 그렇다고 조르쥬가 그토록 싫어하는 시설로 다시 돌려보내는 누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조르쥬와 누나가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가까운 곳에 성인을 위한 주간보호센터라도 있으면 낮에는 그 곳에서 조르쥬가 생활하고 밤이면 누나 집에 돌아와 함께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조르쥬와 누나가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워킹타이틀 필름즈

하지만 영화에서 세상은 조르쥬에게 얼음처럼 냉정하다. 구두 가게 점원은 그를 마치 강도라도 본 것처럼 두려워하고 식당의 웨이트레스는 안경 벗은 조르쥬를 벌레라도 되는 것 처럼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도망간다. 순수한 영혼을 지닌 조르쥬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아무런 악의없이 호의를 표하지만 사회는 조르쥬에 인사에 화답하지 않는다. 다만 아리와 아리의 두 아이들만 아무런 차별없이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준다. 조르쥬는 친구 아리를 위해 시설의 동료들과 같이 버스를 탈취하여 아리의 집이있는 해변으로 찾아가 아름다운 생일 축하 불꽃놀이를 밤새도록 선사하고, 마침내 아이들과 아리의 아내를 돌려놓는다. 아리는 조르쥬의 덕으로 그가 그리도 어려워하던 가족에게 돌아간다.

아리는 조르쥬의 덕으로 그리운 가족에게 돌아간다.ⓒ워킹타이틀 필름즈

다시 혼자 남은 조르쥬. 마음의 고향이었던 어머니는 이 세상이 없고, 한 점 혈육인 누나는 그와 같이 살 수 없다고 거부한다. 세상은 다시 조르쥬를, 그의 존재를 너무 쉽게 무시할 것이다. 결국 조르쥬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행로를 택하는 것 뿐이다. 그 곳은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는 곳, 장애를 가진 조르쥬를 아무도 조롱하지 않는 곳, 친구인 아리와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곳이다. 그 곳에서 조르쥬는 행복한 모양이다. 화단에 떨어진 그의 얼굴은 행복하게 웃는 얼굴이다. 그리던 어머니라도 만난 걸까? 그리고 영화에는 마지막 대사가 흐른다.

혼자 남은 조르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별로 없다. ⓒ워킹타이틀 필름즈

"태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음악만 들을 수 있었을 뿐. 신은 첫째 날 태양을 만들고, 둘째 날 바다를 만들고, 셋째 날 풀밭을 만들고, 넷째 날 소를 만들고, 다섯째 날 비행기를 만들고, 여섯째 날 인간을 만들었다. 일곱째 날은 쉬는 날이지만 구름을 만들고, 여덟째 날 조르쥬를 만들었다! 보시기에 참 좋으셨다."

‘제8요일’은 세상엔 없는 날이다. ⓒ워킹타이틀 필름즈

*이 글은 제2기 장애인영화 칼럼니스트교실 수강생인 안미선씨가 쓴 글입니다.

‘유토피아’는 2007년 장애인영화 전문칼럼니스트 강좌 수료생들의 모임입니다. 저희들은 영화를 사랑하고 장애현실을 살아가는 눈과 감수성으로 세상의 모든 영화들을 읽어내려고 합니다. 저희들은 육체의 장애가 영혼의 상처로 이어지지 않는 세상, 장애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는 세상, 차이와 다름이 인정되는 세상, 바로 그런 세상이 담긴 영화를 기다립니다.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위해 이제 영화읽기를 시작합니다. 有.討.皮.我. 당신(皮)과 나(我) 사이에 존재할(有) 새로운 이야기(討)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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