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잡힌 죄목이 뭔지 아세요?”

풍기문란죄, 더구나 국모가 돌아가셨는데. A의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3일 직결을 살다 나오니 또 잡아 갔다. 아마도 A의 부모가 시킨 것 같았다. 나오면 또 잡혀 가고. 죄명은 도로방해 등 붙이면 그만이었다. A를 안 보면 미칠 것 같았는데 3일 또는 일주일씩 경찰서에 잡혀 있어야 했으니 기가 막혔다. 서너 번 경찰서를 들락거린 후 드디어 A와 달아나기로 했다. 형사들이 쫓아오니 숨을 곳이 없었다. 차라리 죽자. 한강으로 향했다. “이대로 죽으면 우리 사랑은 어떻게 되나” 차마 죽을 수가 없어 돌아섰다.

붕어빵 굽는 최정철씨. ⓒ이복남

을지로에서 멀리 떨어진 영등포 등에서 구두도 닦고 목욕탕 청소도 했다. “경찰이 미아는 못 찾아도 우리는 귀신같이 찾아냅디다.” 돈이 없어 자장면 한 그릇을 나눠 먹기도 하면서 이곳저곳 숨어 다니다가 A는 또 잡혀가고.

드디어 A가 300만원을 가지고 집에서 탈출을 했다. 똘마니 둘을 데리고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77년 서면 대아호텔 부근 구두터에 취직을 했는데 월급이 30만원이었다.

얼마 후 롯데호텔 부근에 구두터 하나를 150만원에 사서 ‘직업소년 자립의 집’ 1호점을 개설했다. 그리고 옆에다 포장마차를 설치했는데 방범대원들과 싸우고 구청과 싸우고, 철거하면 또 만들고 직결에 넘어가고. “더 이상 니하고 싸우기도 지겹다” 단속반이 먼저 손을 들었고 포장마차 6개는 수입이 짭짤했다.

돈이 되자 A는 당감동에 술집을 차렸고 그는 서면에 가라오케를 차렸다. 생활이 안정되고 수입이 들어오니 새로운 욕심이 생겼으니 자식이었다. A는 그동안 도망 다니느라 몇 번의 유산을 한 뒤로 다시는 아기를 가질 수가 없게 되었다.

88년 어느 날 그가 운영하는 가라오케에 예쁜 아가씨들이 생일파티를 하러 왔다. 그 중에 정말 예쁜 B가 있었는데 어쩌다 하루 밤 연애에 임신을 했다.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 A가 헤어지자 했고 그는 B를 택했다. B는 아들을 낳았고 장사는 잘 되었다.

가라오케도 지하세계이다. 온갖 군상들이 들락거리니 돈은 잘 벌었지만 항상 골치가 아팠다. 어느 날 후배 한 놈이 “형님 골치도 아픈데 이거 한번 해 보세요.” 후배가 내민 것은 마약 즉 히로뽕이었다.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필로폰(Philopon)을 1941년 일본에서 히로뽕(ヒロポン)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였다.-

주변에서 자꾸 권하니 점점 더 빠져 들었다. 비디오 대여점과 상품권 장사를 하면서 돈은 끌다시피 했다. 그런데  히로뽕에 빠져 있는 동안 B가 바람이 났다. 제발 다시 돌아오라고 애원을 했지만 B는 거절했다. 긴 절망과 고통을 히로뽕으로 달래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했던가. 95년 1년 6개월 징역형을 받고 교도소에 있을 때 B의 이혼서류가 왔다. 아들이 7살이었는데 아들은 후배 어머니가 맡아 주었다.

마약류사범 단속현황/검찰청. ⓒ이복남

그가 하던 사업은 후배들이 해 주었기에 교도소에서도 제왕처럼 군림했다. 면회를 못 오는 사람들에게는 가족들 대신 사식도 넣어주는 등 어려운 사람들을 돌 봐 주었던 것이다. 출소 후에도 그의 사업은 여전했기에 돈에 궁하지는 않았고 다시금 악마의 유혹에 빠져 들었다.

“술 마시는 사람들이 술 깨면 다시 마시듯이 주사를 맞으면 기분이 좋았고 깨고 나면 후회하지만 또 하게 됩니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C를 만났다. C와 살면서도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지는 못하였다. 한번 가면 6~18개월 살았는데 가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다. 그때마다 C는 다시는 하지 말라고 눈물로 애원 했다. 교도소에서는 다시는 안 하겠다고 맹세를 했지만 나오면 그만이었다. C는 그를 새사람 만들겠다며 낌새만 보이면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나오면 잡혀가고 나왔다가 서너달 지나면 또 잡혀가고. 

2008년 2월 15일 열 번째 출소를 했다. 이제 C도 그의 곁을 떠났고, 벌어 놓았던 재산도 사업도 다 날아가 버렸다. 완전 빈털터리가 된 것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서면에 구두터 하나를 만들었는데 구청단속반에서 실어가 버렸다.

리어카 하나를 구해서 롯데백화점 부근에서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배워서 아는 후배 집에 잠만 자면서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 붕어빵을 굽고 있다. 12시간을 한쪽 다리로 버티려니 다리가 저리고 아프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있다. 목표가 있기에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도 못하고 혼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아들을 위해서, 그리고 또 다른 제2 제3의 자신과 같은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 ‘마약퇴치운동’에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 후배 동생들이 찾아오는데 다시는 연락도 하지 말라며 쫓아 보낸다고 한다.

이제 지난날 함께 했던 후배나 동생들은 다 떠났지만 부근에서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 용기를 주는 고마운 분들이 생겼다. 내년 6월에는 마약퇴치를 위해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할 계획이란다. 최정철씨 부디 악마의 유혹을 과감히 물리치고 마약퇴치의 선봉에 서시기를. 끝.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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