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을 확정 받은 환자와 그 가족들은 거의 비슷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당황, 놀람, 분노, 절망, 포기 등. 거기에 더해 앞으로 5년 이내에 사망하게 될 거라는 시한부 통보를 받으면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첨단의료과학을 자랑하는 이시대가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와 가족들은 다양한 형태로 병을 확정을 받아들인다. 일부는 시한부통보에 그만 좌절하며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고 일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병마와 맞서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병마와 맞서기로한 환자들은 처음 각 지역의 메머드병원을 찾아 간 혈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임상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나의 경우, 서울에 있는 H대학병원에서 시행하는 임상에 참여하여 근 1년간 치료를 받았지만 결과는 참혹한 것이었다.

꼭 1년 전의 에이블뉴스 칼럼리스트 간담회 모임 당시 목발을 짚고 나의 힘으로 걸어서 참여했었지만 지금은 아득한 날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병을 낫고자 찾아다녔던 1년 사이에 목발은커녕 목을 가누기도 힘든 지금 이런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안산K대학병원, 분당S대학병원, 서울H대학병원들이 그동안의 병원순례 목록에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으나 어느 곳에서도 병의 적절한 대응을 하지는 못했다.

산을 좋아하는가. 연초록색 새순이 돋아나는 춘삼월의 산을 좋아하는가?

초록비 가득 내리는 팔월의 여름 산은? 오솔길 가에 가만히 내려앉은 고운 낙엽의 가을 산을 좋아하는가? 세상이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순정한 겨울 산은 ?

산이 아름다운 이유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산이 아름다운 이유는 누군가 먼저 걸어가서 훗날 뒤따라오는 이들을 위한 흔적으로 숲사이 작은 발자국을 남겨두었다는 것.

루게릭병은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아무도 걸어 가본 적이 없는 전인미답의 땅이다. 그렇다면 진정 루게릭병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불치의병인가? 가을이 한참 물들던 지난 시월, 빛고을 광주에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강원도에서, 충청도에서, 경상도에서, 전라도에서, 경기도에서 그리고 서울에서병마에 시달리던 환자 13명이 W대학광주한방병원에서 모였다.

발병 1년부터 최고 20년까지 병력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환자들이 루게릭병과 맞서기위해 힘을 모은 것이다.

그 힘의 중심에 인간 김태현이 있다. 아무도 가지 못하고 누구도 감히 맞서지 못했던 루게릭병.발병 11년 차의 병력을 가지고 있는 환자 김태현.

34살의 젊은 나이에 발병하였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던 김태현은 양방과 한방을 넘나들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드디어 정상으로 가는 작은 길 하나를 찾게 된다.

1958년 서울 출생. 초등학교 시절, 전후 베이비붐 1세대답게 오전반 오후반을 넘어 저녁 반까지 나뉠 정도로 유달리 많은 또래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늘 그렇듯 살아간다는 것은 주연과 조연의 적절한 배치. 안타깝지만 그 많은 또래들과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주목받은 적이 없는 그림자 인생이었다. 많은 이들이 시대의 훈장으로 여기는 민주화 시절도 공중전화박스에 숨어 지켜보는 것으로 흘려보냈고, 그때의 투사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섰던 참여정부의 시대도 내게 주어진 역은 노동과 식량을 바꾸는데 익숙한 도시노동자.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주연들만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는 것, 바로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그들에게 글을 읽는 작은 재미를 드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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