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으로 투병중인 박승일 전 모비스 코치. ⓒ노컷뉴스

루게릭을 아는가? 스티브 호킹은? 박승일은?

몸의 장애가 탈주기관차처럼 멈추지 않고 달려가던 지난 여름, 드디어 몸의 모든 기능이 망가지고 말았다. 모스 부호를 치듯 힘들게 손가락하나로 이어가던 타이핑마저 그만 가느다란 숨을 놓았다.

세상을 살다보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기적적인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차가운 돌비석에서 땀이 흐르고, 하얀 성모마리아 상에서 피눈물이 나오고, 의학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말기 암환자가 완치 판정을 받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이렇듯 기적은 너무나 흔하고 많아서 기적이라는 말 자체가 차라리 진부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지구상에 단하나 단 한 번도 기적이 나타나지 않은 난공불락의 성, 근위축성측색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 筋萎縮性側索硬化症)이 있으니, 이른바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무서운 병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사망한 루게릭은 미국사람이다. 천재 물리학자로 그 이름을 날리고 있는 호킹스는 영국 사람이다. 2m에 가까운 훤칠한 미남 농구선수 출신 박승일은 현시대에 사는 한국 사람이다.

이렇게 시간과 장소, 인종에 구애 받지 않고 지구 전 지역을 아우르며 발생하는 이 병이 학계에 보고된 지도 얼추 두세기가 지나고 있지만 불행하게 아직까지 발병원인, 진행과정, 치료방법, 어느 것 하나 밝혀진 게 없다.

현대 의학으로 보자면 루게릭병은 발병이후 2년에서 5년 이내에 사망하는 불치병이다. 몸의 근육이 서서히 말라가고 최후에는 심장부 횡격막의 근육이 마비되면서 결국에는 호흡곤란으로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약 1,500명에서 2,000명 정도의 환자가 등록되어 있고, 개인적인 이유로 병을 숨기고 그늘 속에 가려져 있는 환자가 약 1,000명 정도 더 있을 것으로 추정 된다.

이 병의 잔인함은 장애의 정도와 비례하여 훨씬 더 명료해 지는 의식에 있다. 바짝 마른 나무토막처럼 굳어가는 자신의 팔과 다리를 매일 마다 바라다보는 고통.

그렇게 죽어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가족의 고통.

그러나 루게릭병의 현실은 한마디로 암울할 뿐이다. 현재 루게릭병 환자들이 그리는 궤적은 거의 비슷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발병이후 병명을 찾기 위하여 지루한 병원순례, 환자들 마다 국내의 모든 대학병원을 넘나들며 근전도, 심전도, MRI, CT, 혈액검사, 조직검사 등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마치고 최후통첩으로 받는 의사의 판정이 바로 루게릭병이며 그 순간부터 당사자는 물론 가족의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빈틈없이 준비된 데이터를 쥔 의사는 잊지 않고 덧붙인다. 현대 의학으로는 아직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입니다.”

양방이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해주는 의학적 기여나 배려는 그 한마디가 마지막이다. 그들은 절대 데이터를 벗어나는 의료행위를 환자들에게 해주지 않는다.

환자 수의 희귀성은 사업의 영세성을 말한다. 즉, 신약을 개발할 사업성도 없고, 몇몇 되지도 않는 환자를 위한 의료장비 개발도 매력이 없는 운명을 루게릭병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것이다.

1958년 서울 출생. 초등학교 시절, 전후 베이비붐 1세대답게 오전반 오후반을 넘어 저녁 반까지 나뉠 정도로 유달리 많은 또래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늘 그렇듯 살아간다는 것은 주연과 조연의 적절한 배치. 안타깝지만 그 많은 또래들과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주목받은 적이 없는 그림자 인생이었다. 많은 이들이 시대의 훈장으로 여기는 민주화 시절도 공중전화박스에 숨어 지켜보는 것으로 흘려보냈고, 그때의 투사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섰던 참여정부의 시대도 내게 주어진 역은 노동과 식량을 바꾸는데 익숙한 도시노동자.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주연들만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는 것, 바로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그들에게 글을 읽는 작은 재미를 드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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