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다. 이곳 남가주는 지난주까지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지난 주말 비가 오더니 어느새 가을에 들어선 느낌이다. 큰길에도 골목길에도 낙엽 투성이다. 밤새 떨어진 낙엽이 마당에 무더기로 쌓여있는 집들도 있다.

금년에는 연말이 여느때보다도 더 빨리 다가오는듯 하다. 불투명한 연말경기에 상가들은 일찌감치 크리스마스 시즌을 시작했다. 10월말부터 상가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나붙었고 세일광고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난 가을을 좋아한다. 여름내 비가 오지않던 남가주에도 가을이면 비가 내린다.

난 코끝에 와닿는 바람이 싸아하게 느껴지는 가을 아침에 마시는 뜨거운 커피를 좋아한다. 차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어딘가 차를 몰고 가는 것도 좋고,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비를 보며 70-80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한다.

연말이 되면 동료들끼리, 동창들끼리, 또는 향우회 등의 단체 중심으로 파티를 하는 한국의 문화와는 달리 미국사람들은 가족 중심으로 연말을 보낸다.

미국 사람들에게 가장 큰 명절은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다. 이때가 되면 멀리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가족이 없거나 사정이 있어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친구네 집에 초대를 받아 구운 칠면조를 먹는다.

난 크리스마스에 주고받는 작은 선물들을 좋아한다. 비싼 선물은 주자니 가계에 주름이 늘고 받아도 부담스러워서 싫다. 내가 선물을 줄 때는 이를 받고 즐거워하는 상대방의 표정을 보는 것이 좋고, 내가 선물을 받을 때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포장지를 뜯는 즐거움이 좋다.

직장동료들과는 화이트 엘리펀트 (white elephant) 선물을 교환한다. 이는 자신에게는 별로 필요없는 물건을 잘 포장해서 교환하는 것인데, 이때 번호를 뽑아 선물을 고른다. 1번을 뽑은 사람이 선물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여는 것으로 시작한다. 2번을 뽑은 사람은 1번이 이미 열어본 선물을 가져가거나 새로 선물을 골라 열 수 있다. 2번이 1번의 선물을 가져가 버리면 1번은 새로운 선물을 열게 된다. 3번은 1, 2번의 선물을 가질 수도 있고 새로 선물을 열 수도 있다. 10여명이 모여 이렇게 선물을 풀게되면 다른 여흥없이도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금년에는 가족들끼리는 이름을 뽑아 각자 선물을 하나씩만 준비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4주전인 추수감사절에 모일 때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을 몇가지씩 쪽지에 적어 오면 이를 뽑은 사람이 그 중에서 한가지를 사주기로 했다.

내가 11월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직도 벽에 남아있는 두장의 달력때문이다. 이 무렵이면 지난 1월, 아직 잉크냄새도 채 마르지 않은 달력을 걸며 세웠던 계획들이 어디쯤 와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혹시 미루어두었던 일들이라면 아직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어 좋다.

한국도 미국도 모두 불경기로 힘든 때라 어렵고 외로운 이들에게 돌아가는 관심이 여느때보다도 줄어들 것 같다. 비록 물질적인 선물의 양이나 질은 줄어들지라도 이들에게 보내는 온정의 마음만을 줄어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나의 기억 속에는 내가 한때나마 걸어 다녔다는 사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다만 낡은 사진첩에 남아있는 한 장의 흑백사진 이 한때는 나도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입니다. 세살에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81년에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주정부 산재보험국에서 산재 근로자들에게 치료와 보상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누군가 이글을 읽고 잠시 즐거울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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