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에 와닿는 바람이 싸아하게 느껴지는 어느 가을날 아침의 일이었다. 주말 아침 장을 보기 위해 수퍼마켓에 갔는데 마침 동부에 사는 누이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이른 아침이라 근처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수퍼마켓 입구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장을 보고 나오던 중년의 백인 여성이 손을 가로 저으며 내게 뭐라고 말을 하더니 종종 걸음으로 지나갔다. 잔돈이 없어 미안하다고 말한 것 같았다. 그제사 감이 잡혔다. 휠체어 장애인이 마켓 입구에서 뭐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나를 돈을 달라고 구걸하는 걸인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얼마 후에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문구점 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려 하는데 커다란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을 타고 온 백인 남성이 내 차의 운전석 쪽에 너무 가까이 주차를 하고 앞서 문구점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를 따라가 ‘Excuse me!’ (실례합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들은 척도 안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계속 그를 따라가며 다시 그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그에게 당신의 차가 내 차의 운전자 쪽에 너무 가까이 세워져 나중에 내가 차를 탈 수 없으니 조금만 떨어져 세워달라고 했다. 그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얼른 달려가 차를 다시 세웠다.

문구점 안에서 다시 만난 그는 내가 구걸을 하는 것으로 잘못 오해를 했었다며 사과했다.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자주 겪게되는 또 다른 해프닝은 병원에서 생긴다.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가면 아픈 사람은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간호원은 나를 환자로 여기고 혈압과 체온을 재려고 한다. 휠체어에 앉아 있으니 당연히 환자이거니 하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누구나 다소간의 편견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미국의 이민사회에도 편견은 있다. 동포들 중에는 자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은데 한인직원을 선호하며 금전거래는 그들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다.

가게에 흑인이 들어오면 유난히 신경을 쓰며 혹시나 물건을 훔쳐갈까 싶어 경계한다. 한인들이 경영하는 업소에서 힘들고 거친 일들은 모두 라틴계 이민자들이 한다. 식당에서 그릇을 닦고 뜨거운 불 앞에서 순두부를 끓여내는 것도 이들이다. 한인들은 흔히 이들은 ‘멕작’ 이라고 부르며 업신여긴다.

편견은 백인들도 가지고 있다. 중국사람이 운영하는 세탁소가 옷을 깨끗하게 세탁한다고 생각하며 동양음식은 모두 건강에 좋다고 믿고 있다.

동양계 아이들은 모두 수학을 잘한다는 생각도 이들이 갖고 있는 편견 중의 하나다.

편견을 버릴 수 있다면 상처받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며 세상은 휠씬 더 살기좋아 질 수 있을텐데 말이다.

난 가끔 직장동료들에게 나의 은퇴계획을 들려주곤 한다. 낡아서 무릎에 구멍이 난 청바지를 입고 녹이 난 빈 커피깡통을 들고 휠체어에 앉아 마켓 앞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 수입이 괜찮을 것이라고.

나의 기억 속에는 내가 한때나마 걸어 다녔다는 사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다만 낡은 사진첩에 남아있는 한 장의 흑백사진 이 한때는 나도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입니다. 세살에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81년에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주정부 산재보험국에서 산재 근로자들에게 치료와 보상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누군가 이글을 읽고 잠시 즐거울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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