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 만에 병원생활을 끝내고 친척들이 살고 있는 부산으로 내려와서 개금에 집을 한 채 샀다. 팔이 2급, 다리가 3급으로 중복장애는 1급을 받고 방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상완신경총 손상’으로 오른팔에 감각은 없는데 시도 때도 없는 통증으로 통증클리닉을 찾았더니 무슨 기계를 설치해 보라고 했는데 기계 값이 집 한 채 값이었다.

대구달성공원에서 아내와 아이들 ⓒ이복남

“가진 거라고는 집 한 채 밖에 없는데 아이들 공부는 어떻게 시킵니까.”

그냥 견뎌보기로 했다. 날씨가 좋을 때면 아내는 문 밖에 의자를 내다 놓고 그 의자에 앉혀 주고는 반찬값이라도 번다면서 신발부품을 부업거리로 받아 왔다.

하루 종일 멍하니 의자에 앉았다가 보조기를 차고 목발을 짚고 한 발짝씩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했다. 십미터, 이십미터 그렇게 조금씩 걷다보니 집 앞에 야트막한 야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든 저 산위에 한번 올라가 봐야지.

지금은 개금테마공원으로 조성되어 길도 나무계단으로 다듬어져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좁다란 흙길이었다. 낑낑대며 산을 오르다가 넘어지면 혼자서 일어나지를 못해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몇 달만인가 산꼭대기에 오르자 퍼질러 앉아 엉엉 울었다. 알 수 없는 감동과 환희의 눈물이었다.

꾸루룩 꾸꾸, 꿩 울음소리도 들리고 나무사이로 청설모도 보였다. 그때부터 비가 오지 않는 날은 날마다 공원엘 올랐다. 처음에는 몇 시간씩 걸리던 길이 1시간 남짓이면 오를 수가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자 집에서 부업을 하던 아내가 회사에 출근을 하면 수입이 몇 배는 된다며 회사에 나가고 싶어 했다.

“나는 우짜라고?” 대번에 언성이 높아졌다. 사고 이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회사가 집 근처에 있기 때문에 점심때는 집에 와서 밥을 차려 주겠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신발공장에 출근을 했고 낮에는 남편의 점심상을 차리러 집엘 다녀갔다. 몇 달이나 지났을까 어느 날 오후 싱크대에는 빈 그릇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사고 후 불국사 나들이 ⓒ이복남

“심심한데 설거지나 한번 해볼까.”

한 손으로 처음 해보는 설거지가 잘 될 리가 없었지만 아무튼 설거지를 했다. 저녁에 퇴근한 아내가 깜짝 놀랐다.

“당신이 설거지를 했어요?”

“예 내가 했어요.”

“당신이 한 손으로 어떻게 설거지를 했어요. 정말 고마워요.”

아내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감격해하는 아내의 눈물을 보면서 다음에는 청소기도 돌려보고, 또 다음날에는 밥도 해놓곤 했다. 그동안 입만 가지고 담배 가져와라, 재떨이 가져와라, 아내와 아이들을 시켰던 자신이 미워서 담배도 끊었다. 보조기를 벗으면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끔 아내가 늦을 때는 아이들이랑 자장면이나 짬뽕을 시켜 먹기도 했는데 아이들에게 먹은 그릇을 씻어서 내놓게 했다. 2002년 월드컵열기가 온 나라를 뒤흔들 무렵 중국집 사장이 직접 그릇을 찾으러 와서는 고맙다며 16강에 들면 탕수육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가족들과 텔레비전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16강에 들어 기쁨에 들떠있을 때 딩동 벨이 울렸다.

“누구세요.”

“탕수육 왔습니다.”

“탕수육 시킨 적 없는데요.”

“16강에 들면 탕수육 한 접시 드린다고 안 했습니까.”

“세상에나,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8강에 들면 탕수육 한 접시 더 드릴 테니 열심히 응원해 주세요.”

부산 월드컵 경기장에서 ⓒ이복남

2002년 그 때 우리나라는 4강까지 들었었기에 탕수육은 세 번이나 대접 받았다. 비록 뛸 수는 없었지만 축구를 좋아해서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사직구장까지 직접 관람을 가기도 했었다.

언젠가 테마공원에 갔을 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교통사고라고 했더니 가야에 있는 장애인회관을 소개해 주었다. 장애인회관에 나가서 물리치료도 받고 다른 장애인들도 만났으나 조급한 마음에 무리한 운동으로 또 한 번 다리가 부러져 1년 동안이나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 후부터 아내 윤경희(42)씨와 아들 종부(고3) 딸 화정(고1)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다쳐서는 안 되겠다 싶어 조심한단다. 요즘은 장애인단체 사무실에 나가 상담 등을 해주고 있어 더 이상 아내도 점심을 차리러 오지 않는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가 성공하여 팔이나 다리 하나만이라도 다시 쓸 수 있다면 좋겠다는데 그 소원은 언제쯤 이루어질는지. 끝.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