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은 24층 건물에 있으며 우리 회사는 1층에서 8층까지 그리고 16층과 18층을 사용하고 있다. 난 오랫동안 7층에서 일을 했었는데 수년전 매니저로 승진을 하며 2층으로 내려왔다. 그 당시 지역사무소장으로 있던 ‘린다’ 가 비상시 나를 대피시키기 위해서는 7층보다 2층이 용이하다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다행히 아직까지 화재 등의 실제 상황이 발생한 적은 없다.

분기별로 빌딩전체가 참여하는 비상대피 훈련을 한다. 대피시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에게는 두 명의 직원이 배정되어 있다. 한사람은 나와 함께 비상계단 옆에 대피해 있고 다른 한사람이 비상구를 통해 내려가서 긴급구조요원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되어있다.

10여년 전의 일이다. 내가 근무하던 ‘몬테리 파크’ 지역사무소는 6층에 위치해 있었다. 어느 날 오후 갑작이 화재경보가 울렸다. 실제 상황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비상시 대피요령 등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나를 어떻게 대피시킬 것인가를 놓고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데 ‘오하라’ 라는 이름의 일본계 직원이 나서며 자기 등에 업히라고 했다. 평소에 별로 친하게 지낸 적이 없는 동료였다. 그는 나를 등에 업고 단숨에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고 두 명의 동료가 나의 휠체어를 들고 뒤를 따랐다. 작은 키의 그가 나를 어설프게 업은 탓에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나의 한쪽 발이 계속 바닥에 끌려갔다. 그러나 힘들게 나를 업어 나르는 그에게 불평을 할 처지도 아니었다.

건물을 다 빠져나온 다음에야 스위치의 오작동으로 경보가 잘못 울린 것으로 판명이 났다. 회사에서는 그날의 대피상황을 보고 장애인을 위한 대피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바퀴가 달린 들것을 준비했다. 지금도 각층의 비상구 옆에는 이 들것이 걸려있다.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 걸음걸이가 불편한 사람 등, 대피가 용이치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때로는 비상훈련을 하며 넘어지거나 해서 다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기별로 훈련을 하는 이유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재난을 대비하고자 함이다.

지난 봄에는 민주당 대선후보인 ‘오바마’ 가 내가 근무하는 빌딩 24층에 있는 방송국에 왔었다. 그가 방송을 녹음하고 있는 시간에 건물 앞 휴게공간에서 쉬고 있던 우리 회사 직원 한사람이 갑작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심장마비가 온 것이다. 급히 달려온 건물경비원과 오바마의 경호원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911에 (한국의 119와 같음) 연락을 취하여 그는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혈관확장 수술을 받고 복직하여 잘 지내고 있다. 평소에 익혀둔 재난대비 훈련의 덕이다.

과연 재난 시 내가 살아남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평소 연습한 대로만 한다면 난 안전히 대피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처럼 고층건물이 많은 도시에서는 아파트 또는 직장단위로 장애인의 비상대피 계획이 있어야 한다. 문서상의 계획 뿐 아니라 실제 상황을 반복 연습해 두어야 한다.

나의 기억 속에는 내가 한때나마 걸어 다녔다는 사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다만 낡은 사진첩에 남아있는 한 장의 흑백사진 이 한때는 나도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입니다. 세살에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81년에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주정부 산재보험국에서 산재 근로자들에게 치료와 보상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누군가 이글을 읽고 잠시 즐거울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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