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사회’ 표지. ⓒ와온

신간 ‘시설사회’(장애여성공감 엮음, 나영정 외 20명 지음, 출판사 와온, 292쪽, 값 1만6000원)는 한국사회의 정상성에서 이탈한 이들의 삶의 장소를 문제 삼는다.

장애가 있거나 자본주의사회가 요구하는 생산성을 달성할 수 없거나 이성애 기반의 가족을 이룰 수 없는 이는 어디서 살아가야 하는지 꼬집고 있다.

한국사회는 그들의 삶의 자리로 시설을 내세운다. 보호와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권리를 박탈한다.

어디서 살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누구와 관계 맺고 싶은지 질문하지 않는다. 시설은 ‘어쩔 수 없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끊임없이 설득하며 무력하고 통제 가능한 몸을 만들어간다.

지금 여기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는, 함께 살고 싶지 않은 대상을 적극적으로 호명함으로써 이상적인 인간됨의 조건을 구성하는 것이다. 나쁜 시설이 아닌 시설 자체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설을 통해 시설 밖을 정상화하고 지배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사회. 그곳이 바로 ‘시설사회’다.

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탈시설 운동은 시설 거주인이 지역사회로 삶의 자리를 옮기고 상실한 주체성과 권리를 되찾으려는 싸움이며 시설의 소규모화나 민주화가 아닌 전면 폐쇄를 요구한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구조와 권력에 있음을 알리고 국가에 정당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이 책의 필자들은 시설에서 나오는 것만을 탈시설 운동의 목표로 삼아서는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애초에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이에게 자신을 경계하고 차별하는 지역사회는 또 하나의 시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시설은 자립이 가능하면 떠날 수 있는 곳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자립의 의미가 사회 주류의 관점과 기준으로 기획되는 한 그런 자립은 주류같이 돼야 한다는, 도달 불가능한 조건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탈시설을 이야기할 때 ‘무엇으로부터 탈脫할 것인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 "물리적 장소로서의 시설을 넘어 시설화를 추동하는 이 사회의 정상성을 문제 삼아야 한다. 시설 폐쇄는 탈시설 운동의 시작일 수는 있어도 끝이 될 수는 없다”고 필자들은 말하고 있다.

‘시설사회’를 엮은 장애여성공감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숙인, 난민, HIV 감염인, 정신장애인, 비혼모, 탈가정 청소년 등 여러 소수자 집단의 활동가, 연구자들과 지속적으로 만나왔다. 이를 통해 사회에서 배제되고 은폐된 존재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억압의 구조를 밝히고 함께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왔다. 이 책은 그러한 교류와 연대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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