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활보활보' 책 표지.ⓒ북드라망

도처에서 만남이 이루어진다. 집이건 직장이건, 길거리건 카페건. 얼굴을 직접 대면하지 않는 SNS며 하다못해 인터넷 기사의 댓글에서조차 쉼 없이 만남은 이루어진다. 대개 “언제나 적당히거리를 두면서, 예의와 격식 뒤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만남도 있다. 초면이고 뭐고 “‘오줌!’ 하면서, 대뜸 엉덩이를 훌렁 까서” 내미는, 눈뜨고 처음 나누는 인사가 “안녕”이 아닌 “오줌!”인 만남.

이 책 ‘활보 활보 : 초보 장애인활동보조의 좌충우돌 분투기’는 이런 야생적인(?) 만남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이 이렇게밖에 만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지은이인 정경미는 ‘활보’이고, 지은이의 활보를 받는 이 책에 등장하는 세 친구들(S, J, H)은 모두 혼자서는 몸 가누기조차 힘든 1급 뇌병변장애인이기 때문이다.

활보란 ‘장애인활동보조인’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장애인들의 활동을 보조해 주는 직업이다. 먹거나 씻는 것에서부터 요리, 청소, 양육, 쇼핑 등의 가사활동과 등하교, 출퇴근 등을 비롯한 외출에 심지어는 금전 관리까지도 보조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라면, 단순히 서비스 제공자(장애인들은 활동보조서비스의 ‘이용자’가, 활보는 ‘제공자’가 된다)와 이용자 사이라면 이들의 만남이라고 뭐 별다를 게 있겠는가.

이들의 만남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것은 “활보 일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두 개의 다른 신체가 한 몸이 되어 만들어 내는 새로운 활동”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몸은 멀쩡하지만, ‘간기울결’(肝氣鬱結)이라는 마음의 장애를 가진 화병쟁이이다. 뜻

을 풀면 간(肝)의 기운이 뭉쳐 있다는 뜻인데, 한의학에서 간은 ‘소통’의 장부다.

한마디로 간기울결이란 소통을 거부한 몸이 울화 덩어리로 변해 버린 것. 그러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생활이었던 지은이였건만 “책을 읽을 수가 없고, 글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문자를 보면 구역질이 올라왔다 …… 다 귀찮다! 남의 말 다 듣기 싫다! 하면서 하루 종일 깜깜한 동굴 같은 데웅크리고 있다가, 누가 건드리면 격렬한 발작 증세를 보이”기까지 했다.

그랬던 지은이가 달라졌다. “너무 아무것도 아닌 일이 웃긴다” 게다가 “몸에서 하고 싶은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시급 6,400원 정도에 불과한 중노동인데도 “세상에나 만상에나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어!” 하루하루가 신기하다.

S, J, H와의 활보가 너무 신난다. 글자만 봐도 토할 것 같았는데 그녀들과의 활보를 날마다 글로 토해 내고 나면 너무 시원하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도 내 글을 보고 배꼽을 잡는다. 출판사 블로그(bookdramang.com)에서 내 글을 읽은 독자들도 재미있다고 아우성이다.

S, J, H와 지은이는 함께 무엇을 했기에 이렇게 된 걸까?

이 책‘활보 활보’는, 초보 장애인활동보조로 생계를 유지하는 지은이가 1급 중증장애인들을 몸으로 만나 변화하는 자기 삶에 대해 쓴 이야기이지만, 함께 미소짓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응원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에게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질문하게 만든다.

활보와 장애인의 만남에서 보살핌을 받는 존재는 누구인가? 우리는 지은이의 경우가 모든 활보를 대변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또한 역시 활보와 장애인이 서로를 보살피는 존재임을, 사실사람과 사람의 구체적 만남은 그 보살핌과 배려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안다.

몸과 몸이 부딪쳐서 이루어내는, 이 원초적이고 그렇기에 가장 리얼한 만남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생겨난 사람 인(人) 자를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 서로가 기대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삶의 현장에 우리가 아는(안다고 생각하는) ‘장애’란 없음을, 모든 삶이란 원래 그렇게 기대어 사는 것임을, 이책 활보 활보는 ‘웃음’과 ‘역설’ 속에서 어느 이론서보다 어느 사회비평서보다 우리로 하여금 절감하도록 만들고 있다.

<정경미 지음, 208쪽, 신국판변형, 1만3000원, 출판사 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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