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작가의 신간 '도가니'. ⓒ창작과비평

사회인 또는 기자 초년생으로서 마주치는 사회의 풍경은 자주 낯설고 의아스럽다. 진실, 부끄러움을 아는 감수성, 인간에 대한 존중과 같은 가치들이 사회 속에서는 쉽게 무뎌지고 물러져 버리고 마는 것을 생생히 목격하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권력 앞에 허리를 굽히며, 정치인들은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쉽게 불특정인을 향해 '사랑한다'고 말한다. 무렴함 하나 없는 당당한 표정을 보면 새삼 아연한 기분이 되곤 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사회의 세세한 단면과 직접 부딪히면서부터다. 한 사람이 속한 구체적인 맥락과 관계, 이해관계의 유혹을 떨쳐내기가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상황에는 여러 층위와 복잡한 입장이 얽혀들어 있어 시비를 뚜렷이 밝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진실의 차원에서 보자면 기사도 결국 그중 하나의 얇은 단면, 근사치만을 간신히 포착하는 글일 것이다.

그래서 진실에 다가가는 것은, 진실한 가치들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큰 어려움에 부딪히는 일이다. 누구든 그 자신부터도 매우 불완전하고 미숙한 존재이므로, 온갖 거짓과 합리화, 침묵이 두껍게 쌓인 사회에 맞서기란 무척 힘들고 고단한 일일 수밖에 없다.

<도가니>, 진실을 향한 고단한 싸움

공지영의 신간 <도가니>는 바로 그러한 혼곤 속에서도 진실에 다가가고자 노력하는 인물들을 그렸다. 특히 <도가니>는 광주의 한 장애인학교에서 실제로 자행됐던 청각장애아들에 대한 성폭행을 취재해 이를 바탕으로 써낸 소설이다. 청각장애인학교 '자애학원'에서 기간제교사로 일하게 된 강인호와 그의 대학선배이자 인권운동가인 서유진은 자애학원의 교장과 이사진 등으로 구성된 거대한 폭력과 거짓의 세계에 맞서 진실을 구하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강인호는 남과 다를 바 없는 삶의 수순을 밟으며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요령, 이기심을 함께 익힌 평범한 사람이다. 서유진은 아이 둘과 함께 살아가는 이혼녀로, 제 가족을 건사하는 것만도 버거운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진실을 향한 투지를 잃지 않는다. 배부르고 편안하고 남들에게 눈총 받지 않는 삶을 저버리고 고달픔이 뻔히 보이는 길을 택한다. 그 힘은 무엇일까?

저자는 '진실은 몹시 게으르며 비논리적이고 불편하다'고 말한다. <도가니>는 거짓의 힘이 진실의 힘보다 몇배나 더 큰 현실을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 현실 속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진실을 위한 크고 작은 싸움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이제껏 무심했던 타인의 세계에 눈을 뜨고, 어색한 손길로 서로의 온기를 나눈다. 강인호는 청각장애인인 유리와 연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고, 그들과 소통하며 자신도 몰랐던 따스한 힘을 발산한다.

그 힘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도가니>는 거듭 생각하게 했다. 명쾌한 답을 얻진 못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강인호와 서유진, 유리, 연두 등 <도가니>속 인물들의 위태롭고 불안한 싸움의 과정을 함께하는 동안, 내 안에서도 작은 힘이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글을 쓰고 싶다,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의 다짐, 진실을 향한 작은 열망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도가니>의 배경 도시인 '무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진실과 거짓이 혼입된 도가니. 적당히, 무심히 살아간다면 쉽게 명료한 판단,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진실에 바싹 다가가고자 애쓴다면 늘 부딪히고, 넘어지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한없이 약하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여도, 진실은 외면할 수 없는 어떤 힘을 갖고 있다. 은근히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는, 끈질기고 흡인력 강한 힘. <도가니>는 역설 속에 그 힘을 보여주었다. ‘초보’기자인 내게는 초심을 돌아보게 해준 한 고마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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